예전에 3개월 좀 안 되게 탁묘했던 때를 떠올려 본다. 집에 오면 현관문을 열며 이름을 부른다. 갓 우리집에 왔을 때엔 침대 밑에만 숨어있던 녀석이 언제부턴가 현관으로 마중을 나왔다. 안아 들고 코끝을 맞대는 인사를 했다. 당시 내가 살던 집은 지금 사는 집 크기의 두 배는 되었다. 고양이 용품을 둘 만한 공간도 넉넉했다. 이 녀석이 혼자 있는 동안

#1. 요즘은 미련한 이유로 죽는 사람들이 이해 된다. 어떻게 겨우 그런 걸 가지고 죽음을 택할 수 있지? 라고 생각해 왔던 모든 죽음들에 미안함을 느낀다. 간단히 해결할 수 있는 일들조차 차라리 죽음으로 끝내버리고 싶었던 마음에 감히 공감하노라 착각 중이다. 오늘 은행에 사이버 환전 해두었던 돈을 찾으러 갔다가 직원의 권유로 펀드에 가입했다. 가입 선물로 받은 샐러드 보틀을 덜렁덜렁 들고

  #1. 제주도 제주도에 다녀왔다. 원래 나 혼자 가서 쉬다 오려 했었는데, 불현듯 아빠 생각이 나서 모시고 갔다. 동생은 덤으로. 내가 제주도 가려고 했던 건 정말 가만히 쉬고 싶어서였는데 애초에 아빠 모시고 가기로 한 이상 목적은 포기한 것이나 다름 없었다. 그래서 예상보다 훨씬 많은 지출을 하고 훨씬 피곤했고 훨씬 스트레스 받았다. 그래도 여행 갈 때만 해도 많이 설레고

#1. 변곡점 아주 멀쩡하다가도 또 다시 곤두박질치기를 반복한다. 내 의식이 그것을 좌우한다기 보다는 나도 모르는 정해진 스케줄에 따라 그렇게 변해간다는 느낌이 든다. 아주 이상하게도 몸의 컨디션도 그대로 따라간다. 멀쩡한 나를 본능적으로 경계하고 짓밟으려는 것 같다. 여전히 퓨니 상태에 갇혀있는 것이다. 나는 나아지고 싶지만, 내면의 나는 바라지 않는 상태. 나는 더 고통스러워야 하고 더 괴로워해야 하며 더 나를

#1. 어떤 계절 마땅히 추워야 할 그런 날들 말고, 당연히 더워야 할 그런 날들도 말고. 이 계절의 날이 아닌데 불청객처럼 대뜸 찾아온 그런 날들이 종종 있다. 겨울의 한복판이어야 하는데 봄같은 날. 혹은 여름 같은 날. 그래서 누군가는 두터운 패딩코트를 입고 머플러를 두르질 않나, 누군가는 겉옷도 없이 야외 테이블에 앉아 책을 보질 않나. 나에게도 너에게도 오늘이 어떤 날인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