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은 상담의 서두에서 근황에 대한 이야기 시간이 점점 길어지는 느낌이다. 선생님께 말씀 드린 지난 한 주간의 근황을 정리하자면 아래와 같다.

  • 요즘은 아주 늦게까지 야근을 하지는 않는다. 퇴근을 일찍 하게 되면 카페나 술집에 간다.
  • 이번 주말에는 서울에 다녀왔고, 주말에는 삶에 대한 회의감이 더 강하게 든다.
  • 옷장이 집에 새로 들어왔다.

 

사는 게 의미가 없어요.

어릴 때엔 성인이 되고 싶었다. 성인이 되었을 때엔 내 직업을 가지고 싶었다. 직업을 갖고 나서는 그 다음 내 미래를 어떤 방식으로든 그렸다. 당시엔 결혼 계획이 있었으므로, 결혼 생활이 어떨지를 상상했다. 커리어를 유지해 나가기 위해 어떻게 해야 할지에 대한 고민도 했다. 그리고 지금은 아무 계획이 없고 미래에 대해 생각하기를 꺼린다.

오늘은 상담에서 내가 삶에 대한 의지가 별로 없음에 대해 가장 많이 이야기 한 날이었다. 블로그에도 썼지만 나의 내일은 달라지는 게 없고, 일주일 후에도, 일년 후에도 마찬가지라고 생각하고 있다. 즐거움도 기대도 희망도 없이 ‘살아지기 때문에 살고 있는’ 생활이 도대체 무슨 의미가 있는지 답을 구하기 어렵다. 이러다 나이만 먹고 나면 자신의 삶을 스스로 영위할 수 있는 현실적인 능력마저 잃을 것이다. 그 때엔 속수무책으로 쓰러질텐데, 정말 그때까지만 살아야 하는 것인지 생각한다고 했다. 그래도 스스로 삶을 끝낼 용기는 없어서 자연재해로 죽고 싶다고, 농담처럼 말 한다고 했다. (내가 이상적으로 생각하는 죽음은 벼락맞아 혼자 즉사하는 것이다.) ‘마흔이 넘어서도 이렇게 살 수 있나?’ 스스로 질문한다 했더니 어떤 모습이고 싶냐 하신다. 그래서 지금처럼이고 싶다고 했다.

“지금이 만족스러워서요?”
“아뇨. 그래도 지금은 제가 경제적으로 제 앞가림은 하잖아요. 그렇게요.”
“그냥 먹고 살기만 하면 돼요? 삶의 재미에 대해서는요.”
“재미있는게 있다면 더 좋겠죠.”

지금의 삶에 즐거움이 있느냐는 선생님의 질문에 여행 갔을 때도 즐겁고, 보통의 일상에서는 관심 받기를 좋아하는 것 같다고 대답했다. 후자에 대해서는 오늘 처음 이야기 한 것이기 때문에 선생님이 어떤 것이냐며 자세히 물으셨다. 이를테면 트위터나 인스타그램같은 SNS를 많이 한다고 했다. 그리고 그 안에서 내가 멀쩡히 잘난 사람으로 잘 살고 있는 것을 과시하는 것. 그것을 포함한 모든 소셜 활동에서 긍정적 관심을 얻는 것을 좋아하는 것 같다고 했다. (누구나 이런 면이 어느 정도는 있겠지만) 타인의 관심과 반응을 얻는 것에서 만족을 느끼는 관심구걸종자라는 고백을, 어쨌든 했다.

 

집에 있기 싫어요.

그저께에는 발목을 다쳤다. 야근을 하고 사무실을 나서다 넘어졌는데, 이 말에 선생님이 대뜸 ‘집에 가기 싫었냐’고 물으셨다. 그래서 딱히 그런 건 아닌데 사실 그날 발목을 다쳤는데도 좋아하는 술집에 가서 술을 마셨다고 했다. 혼자 가도 부담없이 좋은 곳이어서, 곧잘 가서 노트북을 가지고 논다든가 한다고. 다쳤는데도 불구하고 꼭 그곳에 가야 할 이유가 있었냐고 물으시길래, 곰곰히 생각해보니 굳이 갈 이유는 없었다. 선생님이 다시 질문하셨다.

“왜 집에 가기 싫었냐고 물었냐면, 아주 사소한 실수도 무의식이 반영되었을 수 있기 때문이거든요. 집에 가려고 했는데 다쳤어요. 혹시 집에 가기 싫었어요?”

그래서 좀 더 생각해 봤더니, 정말 집에 가기 싫어서 내가 넘어진 거 같진 않지만, 나는 집에 가기 싫어하는게 맞다. 지금 살고 있는 집이 어떤 의미냐고 물어보셔서 잠만 자는 곳이라고 대답했다. 늦게까지 야근 하고나서는 당연히 어서 자야 하니까 집으로 가곤 하지만 일찍 퇴근 하는 날은 뭔가를 먹으러 다른 곳을 가거나, 카페를 가거나, 술집에 가서 시간을 보낸다. 최대한 내가 집에 들어가는 시간을 늦추는 것이다. 지금의 집에 싫은 것이 있다거나 혼내고 싶은게 있냐고 물으셨을 때엔 딱히 없다고 했다. 집은 나쁘지 않다. 내가 가기 싫을 뿐이지. 분당에서 혼자 살 때에만 해도 집에 가는것이 좋았다. 집에 가서 게임도 하고 영화도 보고 나름 휴식을 취했던 것 같은데, 지금 집은 정말 잠만 자는 곳으로 공간의 의미가 협소해졌다. 집을 정리하면 나아질까? 집에서 밥을 해먹고 그러면? 잘 모르겠다.

 

나를 싫어하는 나. 

블로그에도 썼던, 가구 배송 이야기를 했다. 기사님으로부터 2만원을 되돌려받고 부끄럽고 나에 대한 한심함을 느꼈다고. 그런데 그것도 잠깐이고, 웃기게도 그날 또 백화점에 가서 옷을 샀다고 했다. 오늘 내 이야기를 들은 선생님께서는 ‘내가 나를 들여다봐야 하는 상황을 자꾸 회피한다.’ 고 말씀하셨다.

“집에 가면 어떻게 돼요?”
“혼자 있죠?”
“그렇죠. 집에서는 자기와 시간을 보낼 수 있죠. 오직 나만 있죠.”

평일이야 사회속에 있으니 괜찮지만, 주말만 되면 삶에 대해 깊은 회의감이 오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집에 혼자 있기 때문에 나를 들여다볼 기회가 생기기 때문이다. 그러나 나는 그것 자체를 꺼리기 때문에 주말에는 종일 잠을 잔다. 지난 상담에서도 말씀하셨지만 내가 나를 재우는 행위. 평일에도 일찍 퇴근하게 되면, 나를 홀로 두지 않기 위해서 집에 들어가지 않는다. 다른 사람으로부터 관심을 받고 싶어하는것은 당연하다. 나조차 나를 보지 않기 때문이다. 내 안의 나는 불만이든 뭐든 하고 싶은 말이 있지만 정작 내가 귀기울여 주지 않고 방치하니까. 전에도 나를 들여다보기 위해 감각부터 일깨우자 하셨었지만, 나는 어떻게 반응했던가. 짜증과 화를 내며 그러한 노력을 거부했다.

“예를 들어 어떤 사람이 자꾸 자기를 만나달라고 해요. 근데 안 만나줘요. 왜 안만나줄까요?”
“중요하지 않아서요?”
“그렇죠. 중요하지 않을수도 있고, 그 사람이 싫어서. 상처주고 싶어서.”
“제가 저를 싫어하네요.”

삶의 이유는 저절로 만들어지는 것이 아니라, 스스로 찾아내는 것이다. 내게는 그런 의지가 보이지 않는다고 하셨다. 오늘 선생님은 약 복용을 권유하셨다. 긍정적이진 않다고 말씀드렸더니, 그래도 한 번 생각해 보는 것도 나쁘지 않을 거라 하신다. 지금 나는 스스로에게 지나치게 부정적이고 거부감이 심한 상태이기 때문에 약을 복용하면 그런 부분이 한결 나아질 것이라고 했다. 항우울제는 그런 부정적인 생각들만 사라지게 한다고. 그래서 상담 치료가 더 수월해지도록 도움이 된다고 하셨다. 약을 끊으면 다시 원상태로 돌아가는 것이 아니냐는 내 질문에, 약만 복용한다면 그럴 수 있지만 약을 복용하며 상담치료를 병행해서 호전이 되면, 약을 끊어도 문제가 없을 거라고 하셨다. 약을 먹지 않는다면 앞으로도 계속 자기와 싸우듯 해나가야 하니 더 힘들 수 있다는 말씀도 덧붙이셨다. 고민해 보겠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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