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주에 상담 하지 못 했으므로 2주만에 선생님을 뵈었다. 지지난 주말에 우울함이 극에 치달아 당장 자살해도 이상하지 않을 것 같은 그런 기분이었지만 그래도 이번 연휴를 지나며 나아졌다고 했다. 그냥 잠깐이었다고. 연휴에는 그래도 쉬고, 친구도 만나고, 머리도 하면서 좋아졌다.

“본인이 언제 생기가 있어요?”
“생기 있는게 뭐예요?”
“생기라는 건 삶에 의욕있어 보인다는 거죠. 삶에 의욕이 있을 때가 언제인 것 같아요?”

한참을 고민하다가 여행을 준비하고 갈 때라고 대답했다. 여행이 좋아요, 선생님. 여행을 준비하면서 항공권을 예매할 때 설레요. 여행에 가있을 때가 좋아요. 낯선 곳에 저라는 존재가 뚝 떨어져있는 느낌이 좋아요.

낯선 곳에 있어서 좋은 것일까? 원래 있던 곳을 벗어나서 좋은 것일까?

곰곰히 생각하다가 후자라고 대답했다. 원래 있던 곳을 벗어나서 좋다. 그래서 여행지는 사실 어디여도 상관없다. 선생님은 원래 있던 곳은 어떻기에 벗어나는게 좋으냐고 물으셨다. 구체적으로 이야기 해 보라고.

“그냥 제 삶의 환경에서 벗어나는 게 좋아요. 제 삶은요, 엉망진창이예요. 정리정돈 되어있지 않아요. 그 상황이 답답해요. 뭔지도 모르는 것들이 잔뜩 쏟아져서 저를 가로막고 있고 둘러싸고 있어요. 치울 엄두가 안 나서 저는 그냥 그날그날 숨쉬기 위한 구멍만 만들어놓고 답답함 속에서 사는 거예요. 그런데 여행을 가면요, 그것들 다 놓고 저만 쏙 낯선 곳에 가 있는거예요. 그때 숨통이 트이는 것 같고…….”

나는 왜 내 삶을 엉망으로 만들까? 모든게 귀찮아서, 게으름 때문이라고 했지만 선생님은 그런 게으름조차 사실 무의식의 의지라고 말씀하셨다. 예를 들어, 주말에 내가 잠만 자는 것도 내가 나를 재우는 거라고 하셨다. 평일에는 몰아치듯이, 나를 학대하듯이 일을 하고, 주말에는 아무것도 하지 못하도록 잠을 재우는 것이 의도 되어 있다고 했다. 명절 연휴에 조금만 더 부지런했으면 엄마를 만났을텐데, 게으름을 부려서 엄마를 만나지 않은 것도 아마, 엄마가 보기 싫었던 것 아닐까? 특히 내 경우, 나를 엉망으로 만들고 있는 건 자기 체벌 (punir) 이라고 하셨다. 스스로를 괴롭히고 있다는 뜻이다.

“저는 왜 이렇게 저를 괴롭혀요?”

아직도 복수를 하고 있다.

언젠가 나의 우울증에는 분노가 쌓여있다는 말씀을 하신 적이 있다. 그리고 나는 그 분노를 인지하지 못 하고 있다고도 했고. 선생님이 말씀하시길, 나는 충분히 ‘엄마가 미웠어요.’ ‘엄마가 원망스러워요.’ 라고 말 할 수 있었지만 상담하는 과정에서 한 번도 그런 말을 한 적이 없다고 했다. 이게 참 의아한 일이라고.

“선생님. 저도 엄마 아빠가 미웠던 적 있어요. 그런데 엄마나 아빠한테 말 할 수 없었어요. 엄마는 이미 엄마만의 슬픔에 너무 깊게 빠져있어서 제가 말 하면 더 자학하실게 뻔하고, 아빠도 그냥 아빠의 사정이 있겠지 하고 말았어요.”

특히 엄마, 엄마는 나와 동생 때문에 산다는 말을 매일같이 했다. 그러나 선생님은 이 말에 무척 단호하게 아니라고 말씀하셨다. 그런 삶을 살게 된 것은 결국 당신의 선택인데 그것을 자녀에게 전가해버리는 무책임한 말이라고 말 했다. 당신이 슬플 때엔 나를 돌아보지 않았고, 그 슬픔을 전시하며 ‘나 때문에’ 라고 말하던 엄마였으니, 얼마나 무책임 하느냐 하셨다. 부부 상담을 할 때에 우리 엄마와 같은 사람이 상담을 하면 ‘그냥 (집에서) 나가세요.’ 라고 하신다고 한다. 그러면 이렇게 반문한다고. ‘그럼 저는 어떻게 살아요?’ 결국 본인의 선택이다. 아이 때문이라는 것은 핑계다.

“저는 사실 엄마가 죽을까봐 무서웠어요.”

엄마의 극단적인 우울을 지켜보면서 나는 진짜로 엄마가 죽을까봐 두려웠다. 어느 날 닫혀있는 안방을 열었을 때에 피를 쏟고 쓰러져있는 엄마 모습을 자주 상상했다. 그런 엄마에게 ‘나조차’ 당신의 나약함이 싫고 힘들다고 말 하면, 엄마가 정말 자살할 것만 같았다. 엄마는 정말 나와 동생만 바라보고 사는 사람같았기 때문이다. 한때에는 내가 죽으면 엄마와 아빠가 후회할 텐데- 라는 생각도 한 적이 있다고 말 했다.

“자기를 죽임으로써, 복수하고 싶었던 거죠. 그렇게 많이들 생각해요.”
“네. 가끔 그런 생각 했어요.”
그리고 그 복수를 아직도 하고 있어요. 자기를 죽이지는 못 했지만, 마치 죽인 것같은 생활을 하고 있죠. 그렇게 자기를 파괴하면서 괴롭히고 있는 거예요.”
“선생님, 그럼 왜 최근 2년 사이에 더 심해진걸까요?”
“2년 전에 무슨 일이 있었는지 생각해 봐요. 엄마는 재혼하셨고, 아버지는 따로 사시게 됐어요. 부모로부터 버려졌어요. 버려진게 아니라고 머리로는 이해하고 오히려 엄마를 응원해도 마음은 아닌 거예요.”
“선생님, 그럼 지금이라도 제가 엄마를 미워해야 돼요?”
“아니요, 미워할 수 있다는 마음에 공감할 수 있어야 해요.”

아무리 내 무의식이 엄마를 향한 분노를 쌓아놓고 있다고는 해도, 나는 엄마를 미워하지 못 한다. 엄마를 미워하는 것에 내가 강력하게 저항하고 있다는 것을 선생님도 알고 계신다. T를 비롯한 내 친구들은 ‘엄마가 원망스럽지 않아?’ 라고 물으면 나는 그렇기도 한데…… 라며 말을 흐린다. 이번 연휴에 만났던 친구 C도 자기라면 엄마에게 당신이 나에게 상처를 주었다고 알릴 것 같다고 했다. 그러나 나는 절대 그럴 수 없다. 어린 시절의 내가 엄마 때문에 힘들고 외로웠다 하더라도, 그리고 그것에 공감하려 해 보아도, 그래도 나는 엄마를 미워할 수가 없다. 엄마를 미워하는 것이 너무 힘들다.

“내가 사실 당신이 밉고 힘들었다는 것을 인정하는게, 결국 든든한 딸이 아니었다는 것을 인정하는 것과 같아 더 힘들어요. 거기에 집착했나봐요. 왜 그럴까요?”
“엄마의 곁에 있으려면 든든한 딸이어야 했기 때문이예요.”

아이는 부모가 필요로 하는 모습을 찾아간다고 한다. 그것은 굳이 말로 하지 않아도 부모의 표정과 눈빛을 보고 느낀다. 우리 엄마처럼 나약한 사람에게는 정서적으로 기댈 사람이 필요했고, 나는 그 역할을 수행함으로써 엄마의 곁에 있을 수 있었다. 당신의 슬픔에 빠져있을 때엔 나를 돌아보지 않는 엄마가, 나를 보게 하기 위해서 나는 든든하고 의젓한, 엄마가 모든 것을 털어놓을 수 있는 딸이 되어야 했다. 지금까지 엄마 앞에서 지켜왔던 그 모습을 내려놓는다는 건 감히 상상할 수 없는 일이 되어버렸다.

지난 상담에서, 엄마를 부르기 위해 집을 치우지 않는 나를 발견했고, 이번 상담에서는 지금 내가 스스로 엉망이라고 느끼는 모든 것들이 엄마를 향한 복수에서 비롯된 자기 파괴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내가 엄마에게 복수를 하려는 그 미움은 결국 결핍되어 갈구했던 엄마의 관심 때문이니 어느 정도 맥락이 통하는 것 같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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