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주 상담을 받았던 날, 나는 놀라운 경험을 했다.  야근을 위해 저녁을 먹다가 문득 영화를 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당장 볼 수 있는 영화 중 ‘라라랜드’를 골라 관람했다. 영화를 보고 다시 사무실로 돌아갈 생각이었다. ‘라라랜드’의 OST 호평 덕분에 영화를 보기 전에도 나는 ‘라라랜드’의 메인 테마곡 정도는 알고 있었다. 그리고 영화를 보는 동안 무슨 일이 일어났냐면, 눈물을 콸콸 흘렸다. 

내가 마지막으로 영화를 보며 울었던 기억은 ‘타이타닉’을 볼 때였다. 한국 개봉이 98년도였으니, 당시 나는 만 13세였다. 타이타닉에서 내 울음에 시동을 걸었던 트리거는 잭과 로즈가 아니었다. 이름 모를 3등실 선객이었다. 구조를 포기하고 객실 안의 침대 위에 아이 둘을 끌어 안고 누운 엄마가 ‘- 그래서 그들은 행복하게 살았단다.’ 라고 옛날 이야기를 해 주던 장면에서부터 나는 울기 시작했다. 그리고 이후, 나는 꽤 많은 영화를 봤음에도 영화를 보다가 운 적이 없다. 워낙 최루성 영화를 기피하기도 했지만, 감동을 받는다 하더라도 코끝이 찡해지는 일이 전부였지 ‘울었다.’ 라고 할 만한 일은 없었다.

‘라라랜드’를 보며 여러 번 울컥하였고 결국 어느 장면에서부터는 눈물이 터져서 쉴 새없이 줄줄 흘렀는데, 영화가 끝날 때엔 감당이 안 될 정도로 눈물이 많이 흘러서, 상영관의 사람들이 모두 빠져나갈 때까지 일어나질 못 했다. 엉엉 토해내는 울음은 아니었고 눈물이 쏟아지는 울음이었다. 도대체 그 영화의 무슨 장치가 나를 그토록이나 울게 했던 걸까. 내가 본격적으로 눈물을 흘렸던 장면은 세바스찬과 미아가 천문대에서 데이트를 하다가 밤하늘 위로 둥실 떠올라 춤을 추는 환상적인 연출의 장면이었다. 미아가 공중으로 한 발 떠올랐을 때부터 눈물이 기어이 터져서는 그 시퀀스가 끝날 때까지 줄줄 흘렸다. 그 장면의 비현실적인 낭만, 그리고 감정을 고조시키는 배경 음악 덕분일 거라고 생각하기엔 너무 과하다. 음악의 전개가 워낙 드라마틱 하긴 한데 아무리 그래도 그렇지. ‘라라랜드’는 결코 내가 그 정도로 울 영화는 아니었다.

오늘 상담에서는, 선생님에게 그날의 일을 이야기 했다. 왜 ‘라라랜드’를 선택했느냐고 물으셨을 때, 여러 선택지가 있었지만 ‘라라랜드’의 감독 전작이 괜찮았기 때문에 선택했다고 했다. 영화를 다 보고 나서는 어떤 기분이었냐고 하셨는데, 그냥 의아했다고 했다. 내가 왜 이렇게 울지? 왜 이렇게 울까? 선생님은 아마 내가 울고 싶어서 영화를 봤을 거라고 하셨다. 나도 어느 정도는 공감을 했는데, 상담을 받고 난 후의 감정적 동요에 의해 충동적인 영화 관람을 했다는 건 분명하기 때문이다.

그리고 내 상담의 주요 화제인 엄마에 대한 이야기가 다시 시작 되었다.

엄마로부터 돌봄을 받은 기억. 

엄마는 결벽증에 가까운 분이고, 당신 컨디션이 아무리 고되더라도 기를 쓰고 대청소를 하고야 마는 분이다. 청소를 하지 않으면 직성이 풀리지 않는 성향을 갖고 계셔서, 엄마는 정리정돈을 잘 하지 못하는 게으른 나를 많이 혼내셨다. 엄마가 언제 내 방에 들어올까? 나는 엄마가 아침에 나를 깨울 때라고 대답했지만, 이것보다는 조금 더 심층적인 답변이 필요했다. 결국 내가 대답한 건 ‘엄마가 내 방을 치워주기 위해 들어온다.’ 라고 답하게 되었다. 집에 돌아와서 내 방에 들어갔을 때 정리 정돈 되어 있는 방. 그것이 바로 나를 위한 엄마의 흔적이었다. 그때의 기분에 대해서는 어땠느냐고 물어보셨는데, 아마 엄마는 어지럽혀진 내 방을 보고 무척 스트레스 받으셨을 텐데, 결국 못참고 직접 치우셨구나- 하는 마음에 잠깐 미안했다고 대답했다.

요즘의 내 방은 어떻냐고 물어보시는 선생님께 -이전에도 내가 집 정리를 잘 하지 못한다고 말씀을 여러 번 드린 적이 있다.- 아직도 내 방은 그대로라고 대답했다. 나에게 지금 가장 필요한 사람은 가사 도우미라고 대답했다. 지금 내 방은 정말 최소한의 생존을 위한 정돈만 되어있을 뿐이지, 남들이 보기엔 아수라장이나 다름 없다. 처음 독립했을 때에는 그렇지 않았다. 한 일년 정도는 상당히 말끔하게 집을 정돈해두었던 터라 언제 누가 오더라도 잠깐의 청소만 하면 충분했다. 그러나 어느 시점부터 나는 집안 정리를 하지 않게 되었는데, 부산으로 내려오고 나서부터는 더욱 심각해졌다. 여러 이유가 있겠지만 부산에서 살게 된 방 자체에 적응도 잘 되지 않았고, 짐이 많은 사람이 전에 살던 집보다 작은 집으로 이사를 했으니 짐을 풀 공간도 없었고 등등. 지금은 내가 자취를 시작한 이래 세번째 집인데, 이사 후 정리가 제대로 되지 않은 채 방치되어 난장판이다.

“어떻게 하면 엄마를 부를 수 있을까요?”

갑작스러운 질문이었는데, 1) 아파서, 2) 집 정리를 도와달라고, 3) 내가 마음이 우울해서 보고싶다고 하면, 엄마가 오실 거라고 대답했다. 근데 그 중에서도 사실 1번이 제일 좋은 이유는, 2번과 3번은 엄마에게 ‘그 동안 내가 정상적인 생활을 하지 못했다.’ 라는 고백과 다름없기 때문에 엄마가 이후에도 계속 그 점을 염려하고 걱정하고 우울해 하실까봐 안 될 것 같고, 1번이 가장 깔끔하다고 했다. 아픈 것은 ‘그냥’ 어쩌다 아픈 것이고 다 나으면 그 이후로는 딱히 걱정할 게 없으니까. 선생님이 내 대답에 웃으시더니 길게 말씀하셨다.

내가 A라는 행동을 하면, 나를 찾아와주던 사람이 있다. 만약 그 사람을 또 부르고 싶다면 나는 A라는 행동을 하면 된다. 즉, 집을 어지르고 치우지 못하는 건 의도적인 무의식의 반영이라는 것이 선생님의 의견이었다. 엄마를 부르고 기다리고 있다는 것이다. 나에게 엄마는 ‘내 공간을 치우고 정리해주시는 것’으로 존재감을 주고 계셨기 때문이다. 엄마가 내 방의 문을 열고 들어오는 순간, 즉 나를 돌보는 순간은 내가 방을 어질러놓고 치우지 않던, 방 정리를 하지 않고 있었던 때였다. 깨끗하게 정리되어 있던 방을 보면서 나는 무엇을 느꼈던가. 엄마가 나 때문에 수고를 했다는 가책과 더불어 ‘엄마가 돌보고 있다.’ 라는 안정을 얻었던 것이다. 그래서 나는 엄마를 부르기 위해 집 정리를 하지 않고 있다고.

하지만 엄마는 오지 않는다. 

다시 ‘라라랜드’의 이야기로 돌아갔다. 선생님은 그날 상담을 받았을 때, 어땠냐고 물어보셨다. 나는 ‘위로받은 기분이었다.’ 라고 대답했다. 지난 주 상담을 받기 전까지 상당히 불안정했고 힘들었고, 상담을 받고 나서 많은 이야기가 가슴에 와닿았으며 위로가 되었다고. 하지만 선생님은 단지 그것 때문에 내가 울었다고 보지 않으셨다. 지난 주 상담에서 나는 ‘이제 스스로의 엄마가 되어야 한다.’ 라는 말씀을 들었다. 스스로의 엄마가 되는 것은, 실제 엄마와의 분리와 단념을 받아들여야만 한다는 선고와 같다. 아마 내가 운 데에는 그것도 영향이 있을 거라 하셨는데, 그때 떠올랐다. 나는 이전에도 비슷한 이유로 스스로 납득하기 어려울 만큼 많이 울었던 적이 있던 것이다. 아빠에게 엄마의 재혼에 대해 이야기 하면서 울었던 날인데, 그때의 기억에 대해서도 선생님은 이렇게 말씀하셨었다. ‘그 동안 내가 책임져왔던 엄마가 다른 기댈 대상을 찾았다는 상실에 대한 고백.’이었기에 내가 그렇게 울었을 거라고. ‘라라랜드’를 보며 울었던 것은 그때와 꽤 비슷한 것이었다. 그날의 상담으로 엄마를 기다리고 있는 내 안의 내가 울었다고 하셨다. 엄마는 오지 않는다. 엄마를 부를 수 없다. 이제 엄마가 없으니, 내가 엄마가 되어야 한다.

나는 오늘 마스크를 끼고 상담을 받았다. 감기 기운이 있는 것 같아서였는데, 선생님이 병원에는 가 보았냐고 물으셨다. 아직 안 갔지만 가긴 갈 거라고. 내가 감기에 걸려 앓으면 같이 일하는 다른 사람들에게도 폐를 끼치니까 병원을 가야 한다고 말을 하는데 선생님이 웃으셨다.

“나쁜 엄마네요.”
“예?”
“내 아이가 지금 아픈데, 그게 가장 걱정이 되어야지요.”
“그러네요.”
“지금 정도는 괜찮아. 좀 참아. 아니면, 다른 사람들한테 피해 주니까 병원을 가자. 이런 말들을 하면 아이가 얼마나 섭섭하겠어요. 스스로를 위해서 병원에 가세요.”

 

오늘의 상담은 여기까지였다. 상담을 마치고 선생님이 시간제 가사 도우미를 고용할 수 있는 기관을 알려주셨다. 새 옷장을 들이기 전, 쌓아둔 옷들을 어떻게 정리해야 할 지 몰라 방치해두고 있는 나를 위해서, 도움을 받으라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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