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자처해서 혹사 당하던 생활을 한계 직전 중단하고 연말 휴가를 다녀왔다. 23일이 마지막 근무일이었고 24일 곧바로 비행기에 초췌한 몸을 실었다. 시드니로 날아가 30일까지 보내고, 31일에는 상해에 와서 하룻밤 묵었으며 1월 1일에 귀국했다. 그리고 1월 2일에 출근하여 연말 휴가같은 게 있었나 싶었던 것처럼 그 직전의 생활을 그대로 인계받았다.

나의 휴식이란 하루 종일 자고 저녁 쯤 일어나  쓰레기 같은 시간을 아무 간섭도 없이 홀로 보내는 것인데, 사실 휴가 기간 동안 휴식다운 휴식은 취하지 못 했다. 휴가 기간이 조금 더 길었더라면 내 방식의 휴식하는 날도 가질 수 있었겠지만 그러진 못 했다. 시드니에 갔을 때엔 T의 집에 머물렀다보니 온전히 혼자만의 시간을 제멋대로 보낸 날이 없다. 그래서인지 1월 2일 첫 출근을 하면서 개운하다는 느낌보다는 ‘충전된 느낌 없이 여전히 피곤하다.’는 기분이 더 컸다.  휴가를 다녀오면 완충된 컨디션으로 일을 시작할 수 있을 줄 알았는데, 간신히 죽지 않을 정도로만 충전하고 돌아와 또 다시 ‘조금만 더 버티자.’의 컨디션이다. 하루가 모자랐던 것이다. 단 하루. 1월 1일과 1월 2일 사이에 하루만 더 있었다면 아주 상쾌했을 것 같다. 다음 휴가 일정에 참고할 만한 경험이 생겼다.

게다가 출근한지 이틀만에 청천벽력같은 소리를 듣게 됐으니 오죽하겠어. 어제는 기분이 정말 좃같았다. 결국 병원에 가서 링겔 맞고 왔다. 어차피 피로 해소에 큰 기대는 없고, 그냥 뒈질 것 같으니 근무지를 이탈하여 잠깐이라도 쉬고 싶었다.

 

#2. 

그래도 호주에서 몹시 즐겁고 행복했다. 오직 T가 그곳에 있기 때문에 간 것이나 다름 없으니, 오랜만에 그녀를 보게 되어 기뻤다. 사진과 영상으로만 봤던 조카를 볼 수 있었고, 그녀가 호주에서 어떻게 사는지를 지켜볼 수 있었고, 같이 소리내서 웃을 수도 있었다. 돌아오는 길엔 마음이 무거웠지만 그래도 일주일이라도 함께 보낼 수 있어 좋았다. 나 때문에 신경쓸 일도 더 많았을테고, 아기를 데리고 강행하기엔 다소 힘든 일정들이었기 때문에 무려 코피까지 흘리며 고생한 것이 미안할 따름. 지금 조금 아쉬운 건 어디 다니는 것 보다는 같이 여유롭게 시간을 보내는게 더 좋았지 않았을까- 하는 것이다.

낯선 도시를 가는 것도 재미있는 일이고, 자연 감상도 행복한 일인데 아무래도 나는 후자를 더 좋아하는 듯 하다. 위의 사진은 스카이다이빙을 하러 울릉공에 갔을 때 찍은 것인데, 나는 저곳이 참 마음에 들었다. 하필 날씨까지 너무 좋아서 그곳의 모든 것이 질투나고 샘이 났다. 시드니로 돌아올 때 몹시 아쉬웠다. 언제 한 번 다시 가고 싶다는 생각이 든다. 여행기는 언젠가 조금 여유가 생기면 그때 정리하도록 해야겠다.

 

#3. 

문제의 원인을 안다는 건 해법이 분명하다는 것을 의미하겠지만, 가끔은 당장 이 순간을 괴롭힌다. 전같으면 그저 그날의 컨디션 때문일 거라고 생각할 수 있었던 일들을 요즘은 사소한 것 마저 우울증을 원인으로 지목하곤 한다. 원래 살던대로 살면 그다지 스트레스도 없을 것 같은데, 우울증을 너무 의식해 거기에 잠식되는 기분이라 불쾌하기도 하다. 그리고 이 지경이 될 줄은 몰랐는데 3주 동안 상담을 하지 못하고 있으니, 굉장히 초조하다. 이상 징후를 느껴서가 아니라, 치료 성과가 떨어질 것 같다는 불안에서다. 그래서인지 나답지 않게 좀 예민해져 있다. 이것 마저도 스트레스다. 내가 알던 내가 아닌 다른 모습의 나를 발견할 때, 당연한 일이지만 너무 낯설고 네거티브해진다. 다음 상담에서는 물어볼 작정이다. 내가 우울증 환자라는 것을 계속 의식하고 지내야 하는 건지, 되도록이면 잊으려 해야 하는 건지. 나는 빨리 낫고 싶다.

 

#4. 

제발 신년 각오 같은 거 묻지 말아달라. ‘없는데요.’ 라고 대답 하면 게으른 사람 바라보듯 하지 말아달라. 내가 하는 신년 각오는 업무 상 필요한 2017년 마일스톤 수립과 목표 설정 뿐이다. 나는 신년이 되었다고 해서 새로운 다짐과 각오가 ‘짠’ 하고 생기지 않는다. 자기쇄신은 필요한 때가 되면 알아서 각자 하면 된다. 자기가 새해 각오를 하는 거야 그 사람 자유라쳐도, 달력에 종속 된 수동적인 자기 반성형 인간들이 남에게까지 새시작을 강요하는 분위기 정말 별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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