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월 9일의 상담은 이제까지 일주일 간격으로 상담을 하던것과 달리 12월 7일 상담 이후 이틀만에 찾은 것이었다. 선생님께서는 7일 상담을 마치고 일주일을 더 기다리는 것은 흐름이 너무 끊기는 것 같다며 12월 9일 방문하는 것을 권유하셨다.

선생님께서는 내게 피곤해 보인다고 하셨다. 7일의 상담에서도 새벽 4시에 퇴근한 날 상담을 갔기 때문에 상태가 몹시 좋았는데 9일도 별반 다르지 않았다. 요즘 나를 돌보고 있냐고 물어보셨다. 나는 그렇지 않다고 대답했다. 요즘의 나는 고의적으로 나를 방치하고 내팽개치고 있는 경향이 있다. 왜 나를 돌보지 않느냐는 질문에 나는 ‘귀찮아서.’ 라고 대답했다. 잠은 잘 자냐며, 혹시 꿈을 꾸진 않냐며 물어보시길래 마침 7일 상담 이후 꿨던 꿈을 이야기 할 수 있었다.

나는 트램과 같이 생긴 열차를 타고 어디론가 가고 있었다. 엄마와 아빠도 모두 함께였다. 그렇다고 같은 좌석에 함께 앉아있던 건 아니고 ‘이 안에 엄마도 있고 아빠도 있다.’ 라는 상황만 가정할 수 있는 정도. 강 위의 다리를 건너다가 열차가 멈춰섰다. 창밖을 보니 강의 움직임이 심상치 않았다. 결국 강물이 열차를 덮쳤고 그대로 강에 빠져버렸다. 물 속에서 숨을 못 쉬고 있었지만 괴롭지는 않았다. 보통의 사람이 숨을 참고 20초 정도 견딘다 치면, 내 꿈 속에서는 더 오래 버틸 수 있는 듯 했다. 그래서 나는 물속에서도 별 불편함을 느끼지 못 했다. 엄마가 내게 산소를 불어넣어주듯 내 앞에서 숨을 내쉬셨는데 그 공기방울들이 기억난다. 구조를 기다리다가 일부 사람들은 사망했고 엄마도 그 중 한 명이었다. 나, 아빠, 고교 시절 친구는 모두 구조되었다. 엄마의 죽음에 나는 이렇게 생각했다.
엄마가 죽었으니 나는 슬퍼야 하는데. 슬퍼야 하는데. 슬퍼하지 않으면 사람들이 나를 패륜아라고 생각할거야.

사람은 자기 검열 체계가 있다고 한다. ‘이런 생각 하면 안 돼.’ 이 검열 체계는 무의식에서도 작용하는데, 꿈이란 무의식의 발현 과정에서 검열 체계를 통과하기 위해 교묘히 위장한다고 한다. 즉 내가 평소에는 검열 함으로써 인식하지 못 했던 나의 무의식을 꿈에서 발견할 수 있다는 말씀을 먼저 해 주셨다. 특히나 상담 직후 감정적으로 격해진 상태에서 곧바로 꾸었던 꿈이기 때문에 더욱 그랬을 거라고 하셨다.

보통의 강, 물, 바다와 같은 것은 주로 ‘모성’을 상징하며 교통수단은 ‘부성’을 상징한다고 한다. 특히나 열차를 타고 가다가 강물에 빠졌으므로 이는 어머니로 인한 재난을 의미할 수 있다고 했다. 그리고 꿈에서 결과적으로 구조된 사람들, 나, 아빠, 친구. 꿈은 성취하고싶은 것을 이룰 수 있는 현장이기도 한데 엄마는 구조되지 않고 사망했다는 것은 내가 엄마를 구하지 않았다는 거다. 선생님은 나에게 이런 말씀을 하시는 것이 조심스럽다고 하셨다. 나는 엄마에 대한 ‘부정적인 자세’를 취하는 것에 굉장히 저항이 심하기 때문에.

“저는 엄마가 저를 사랑하지 않는다고 느낀 적 없어요. 엄마는 엄마의 역할에 완벽하지 못 했던 것 뿐이예요. 누구나 완벽하기란 어렵잖아요. 엄마도 조금 서툴렀던 것 뿐이고…….”

소희씨는 항상 엄마의 입장에서만 이야기해요. 어머니는 양육자로서 잘못하셨어요. 엄마로부터 돌봄을 받지 못했던 아이에 대해서 생각해 봐요. 그때의 소희씨의 마음은 어땠을까요.

그리고 ‘재난’에 대한 이야기를 해 보았다. (꿈이 재난이었기 때문에) 내 삶에 있어서 재난이라 부를 수 있는 것이 무엇이냐고 물으셨는데 나는 아무리 생각해봐도 딱히 재난이라 부를만한 일이 없었다. 부모님의 불화나 이혼 같은 것이 내게 재난으로 여겨지진 않았다. 결국 선생님께 이렇게 대답했다.

“재난이라 부를 만한 일은 없고 그냥 제 인생에서 가장 큰 사건이랄만한 것은 있는데 동생이 태어난 사건이 그거예요.”

이때부터는 동생에 대한 이야기를 했다. 뒤늦게 태어난 동생에 대한 거부의 시기를 거쳐 내가 그애에게 충분히 애정을 주지 않았음에도 불구하고 나를 좋아하던 동생에게 미안한 마음을 느끼게 된 계기까지. 그리고 지금은 부모보다 동생을 더 사랑하고 아낀다는 이야기를 모두 했다. 최근 동생 때문에 울게 된 사건에 대해서도 이야기 했다. 이 사건은 친구 T의 말을 빌면, 잘 울지 않는 내가 그 정도로 반응한 것이 이상하다고 생각했던 사건이었다. 엄마가 재혼하시고 나서, 집에 남겨져 있는 엄마가 키우던 열대어를 동생이 한 밤중에 술을 마시고 들어와서도 꼬박꼬박 먹이를 주며 돌보았다는 이야기였다. 나는 동생에게 이 이야기를 듣고는 몰래, 그리고 많이 울었는데 어두컴컴한 집에 홀로 들어와 열대어를 돌보았을 동생의 모습을 상상하니 가슴이 미어졌기 때문이었다.

“왜 슬펐어요?”

“원래 네 가족이 살던 집에 걔 의지랑은 상관 없이 홀로 남아있는 게 마음 아파서요.”

“지키고 있다는 느낌일까요?”

“아뇨, 모두가 떠나고 홀로 그 자리에 그냥 남아있다는 느낌이예요.”

그게 너무 미안하고 안쓰러워요. 걔를 혼자 둬서 너무 미안하고……. 동생의 이야기를 하면서 나는 몇 번 눈물을 보였고, 상담을 마쳤다.

여전히 내가 엄마에게 내재된 분노를 가지고 있다는 사실이 죄스럽고 받아들이기 어렵다. 충분히 원망해도 되는데 그 죄책감을 어떻게 해서든 찾아내는 내가 엄마를 미워해서는 안된다는 강박을 가지고 있는 것 같다고 T가 말한다. 12월 9일의 상담에서는 꿈에서 엄마를 구하지 않은, 살리지 않은 나에게 충격을 받았다. 상담을 마치고 돌아오며 엄마에게 전화하고 싶다는 충동이 들었지만 참았다. 엄마에게 이 모든 것을 털어놓고 당신이 통렬히 후회하게끔 만들고 싶기도, 한편으로는 절대 알려서는 안되는 금기로 취급해야겠다는 다짐을 하기도 했다. 나조차 뭐가 나인지 모를 혼란에 빠졌다.

상담에 다녀올 때마다 울게 된다. 상담 치료에 앞서 힘들 거라는 말씀을 선생님이 하시긴 했지만 그래봐야 얼마나 힘들겠어- 하고 했으나 감정적으로 정말 힘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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