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1/30 상담을 다녀온 이후, 엄마에게 물었다. 내가 화를 잘 안내냐고. 엄마는 웃으며 ‘엄마에게만 화를 낸다.’ 라고 했다. 그리고 ‘넌 아빠를 닮아서.’ 라는 말을 덧붙이셨다. ‘넌 아빠를 닮았어.’ 라는 말은 내가 자라면서 굉장히 많이 들은 말이다. 엄마는 나쁜 이야기를 할 때에도, 좋은 이야기를 할 때에도 나에게 ‘넌 아빠를 닮아서.’ 라는 말씀을 많이 하셨다. 엄마 뿐이랴. 아빠도 마찬가지였다. ‘넌 나를 닮아서.’ 내가 아빠를 닮았다는 것에 대해서는 나도 인정한다. 나는 아빠와 외모 뿐만 아니라 성격도 닮았다. 나 역시 ‘나는 아빠를 닮았다.’ 라는 말을 많이 했다. 굉장히 당연한 것이었기 때문에 엄마와 아빠가 나에게 그런 말씀을 할 때 한귀로 흘리듯 들었다.

이 이야기를 했더니, 친구 M이 말했다. 왜 화를 내지 않아? 너는 아빠를 닮았는데 너희 엄마에게 아빠는 좋은 사람이 아니잖아.

12월 7일 상담에서는 선생님에게 곧바로 이 이야기를 했다. 선생님께서는 흥미롭게 들어주었다. 엄마와 아빠의 불화에 있어 아빠가 가해자라는 것에 대해 나는 동의한다. 그러나 나는 그점에 대해 아빠에게 화를 낸 적이 없다. 그저 엄마 아빠의 불화가 지긋지긋해서 내 일이 아닌것처럼 관망했기 때문이라고 여기기엔 이상할 정도로 나는 화를 내지 않았다. 그러나 딱 한 번 있다면, 약 1년 정도 아빠와 남처럼 지낸 적이 있었다. 일방적으로 내가 아빠를 없는 사람 취급을 하거나 피했던 시기였으므로 이때가 내가 아빠에게 화가 났던 유일한 시기일 것이다. 이 사건에 대해 선생님에게 이야기 하고 싶었지만 나는 말 할 수 있는게 거의 없었다. 왜냐하면 전혀 기억이 나지 않기 때문이다. 그게 정확히 언제인지(대학생때였던 것 같은데), 1년 정도가 맞는지, 무엇보다 ‘왜 내가 아빠를 외면했는지’ 에 대한 기억이 전혀 없다. 정말 신기할 정도로 없다. 과연 오래 되어서일까? 내가 이 사건에 대해 기억나는 장면은 오직 이것 뿐이다.

저녁을 드시고 공원에 산책가시는 아빠를 따라가라며 엄마가 부추겼다. (엄마는 아빠와 사이가 좋지 않더라도 나와 동생은 아빠와 사이가 좋기를 바랐다.) 그래서 엄마에게 등떠밀려 집을 나서는 아빠를 따라 나갔다.

그 이후가 어떻게 되었는지도 전혀 기억에 없다. 필름이 뚝 끊긴 것처럼. 그 이후 나는 아빠와 지금의 내 사이로 돌아와있었다. 정신분석학 적으로 ‘기억이 나지 않는다.’ 라는 것은 굉장히 중요하다고 한다. 거부하고 싶고 받아들이기 싫기 때문에 억지로 기억을 소거시켰을 확률이 높다는 점이다. 특히나 나처럼 앞뒤 상황과 인과관계가 싹둑 잘려나가 있는 경우엔 더더욱.

“아빠에게 화를 안 낸 것이 아니라, 화를 낼 수가 없었네요.”

아빠를 나와 동일시 했던 나는 아빠에게 화를 낼 수가 없었다는 것이 선생님 말씀이었다. 분노해도 나는 화를 낼 수 없었다. 아빠는 나니까. 그렇기 때문에 유일하게 화가 났던 시기에 대한 기억조차 없애버린 것이다.

“엄마와 아빠의 불화에서 분명 아빠에게 충분히 화를 낼 수 있음에도 불구하고 화가 나지 않았다-는 것은, 아빠에게 공감을 하고도 남을 만큼 엄마에게 부정적이었기 때문이었을 수 있죠.”

엄마와 아빠의 불화를 목격할 때마다 나에게 어떤 영향이 있었는지를 선생님은 재차 물으셨지만 나는 여전히 별 영향 없었다고 대답했다. 그럼 어떤 기분이 들었냐고 하시길래 ‘답답했다.’ 라는 말을 했다. 무엇이 답답했어요? 엄마가 답답해요. 왜 저렇게 대응할까. 왜 저렇게 감정적으로만 받아들이는걸까 이해할 수 없었다고 했다.

“제가 엄마에게 화를 내는 경우도 늘 비슷해요. 엄마는 본인이 한 번 ‘이렇다.’ 라고 생각하는 것에 대해 태도를 바꾸지 않아요. 감정적으로 그것만 밀어붙여요. 아무리 아니라고 말해도 소용이 없어요. 그래서 엄마에게 ‘아니야, 아니야, 아니라고!’ 라는 말을 많이 해요. 제발 내 말 좀 믿어달라고. 그거 아니라고. 이럴 때 엄마에게 정말 가장 많이 화를 내고 막 답답해서 죽어버릴 것 같아요.”

그러자 선생님은 또 다시 닫혀있는 안방 문 앞에 서있던 나를 꺼내셨다. 나는 엄마에게 해줄 것이 없었던 자녀였다. 보통의 자녀들은 부모의 웃는 얼굴에 신변의 안전을 느낀다. 부모에게 무슨 일이 있는 것 같아 보이면 웃게 하기 위해 노력한다. 그로써 부모가 웃는다면 자신이 안전하다는 것을 확인 받는다고 한다. 그러나 우리 엄마의 경우, ‘내가 자녀로서 엄마에게 해줄 것이 없다.’ 라는 상황을 너무 자주 느끼게 했다는 것이다. 닫혀있는 안방 문을 열어도 엄마는 나에게 문을 닫고 나가라고 했고, 내가 아무리 엄마에게 말을 해도 엄마는 들어주지 않았다. 엄마에게서 느끼게 되었던 자녀로서의 무력함. 선생님은 그 아이의 모습을 상상해 보라고 했다. 어떻게 보이냐고 물으셨는데 순간 눈물이 터졌다. ‘가여워요.’ 라고 대답하고 조금 더 울었다.

엄마가 외면함으로써 케어받지 못 하고 있던 아이. 마치 지금의 내 모습과 비슷하다고 하셨다. 돌봄이 필요한데 돌보고 있지 않은 상황. ‘돌보아야 하는 아이를 돌보지 않는 이유는 무엇일까요?’ 라고 물으시길래 좀 고민하다가 ‘싫어서요?’ 라고 묻자 선생님이 말씀하셨다. ‘보이지 않아서 돌보지 않는다.‘ 라고. 지금 나를 돌보아야 하는데 내가 보이지 않는 것이다.

오늘의 상담은 여기까지였다.

나는 정말 엄마를 미워하고 있을까? 잘 모르겠다. 친구 T와 M은 엄마를 원망해도 된다고 한다. 내가 지나치게 엄마에 대해 부정적인 감정을 표현하는 것을 억압한다고도 말했다. 그런데 도저히 엄마를 원망할 수가 없다. 오히려 아빠와의 결혼 생활에서 그렇게나 엄마가 고통 받았는데 엄마에 공감하기는 커녕 나도 모르게 아빠에 더 공감하고 이입했다는 사실에 죄의식을 느낀다. 엄마는 나를 언제나 사랑했지만 결혼 생활이 행복하지 못했고 그래서 자녀에게 서툴게 대한 일이 있는 것 뿐이라고.

엄마로부터 숱하게 외면 받아 지쳐버린 내가 엄마를 원망하지 못 하는 것, 그로 인해 나를 돌볼 줄 모르게 되었다는 것이 전제만으로도 너무 슬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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