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생님과 내가 기초 상담과 검사를 통해 공유한 내용은 아래와 같다.

  1. 부모님은 내가 어릴때부터 불화가 잦았으며 청소년기부터 아빠와 엄마는 거의 별거 상태였다가 동생의 군제대 이후 결국 이혼하셨다.
  2.  나는 유약한 어머니와 어린 동생에게 정서적 의지 대상으로서, 가장의 역할을 하며 자라왔기 때문에 어릴 때부터 모녀 관계에 있어 엄마와 역할이 바뀌어 있었다.
  3. 부모님의 이혼과 엄마의 재혼은 나 역시 바란 것이었지만, 엄마의 재혼 이후 더 이상 내가 돌볼 사람이 없다는 상실감에 삶의 원동력을 잃었을 가능성이 높다.

독이 되는 부모

오늘은 회사와 엄마에 대한 이야기들을 나누었다. 엄마와 나의 의사소통에 대해서도 선생님은 마치 내가 남편과 같은 모습이라는 말을 하셨다. 엄마에 대해 설명하는 내 모습이 남편이 아내를 설명하듯 한다고.  (나는 엄마가 착하고 귀엽기도 하다는 말을 함.) 또한, 엄마와 내가 문제에 대해 상의를 할 때에도 부모가 자녀와 상의하는 모습이 아니라 아내가 남편에게 조언을 구하듯 상의한다는 것이었다. 내가 엄마에게 어떤 존재인지를 설명할 뿐만 아니라 나 역시 엄마가 인식하고 있는 역할을 받아들이고 당연하게 생각한다는 것이, 타 모녀지간과는 다른 모습이었다.

“엄마에 대해 생각했을 때 가장 먼저 떠오르는 것은 엄마의 뒷모습. 화분을 보고 있거나, 열대어를 보고 있거나. 저에게 안정을 주는 풍경이예요. 제가 집에 들어서면 그러고 있던 엄마가 뒤를 돌아보며 저를 맞아주는 모습이 떠올라요.”

“왜 그 모습에서 안정을 느껴요?”

나는 이 질문에서 조금 머뭇거리게 되었다. 한 번도 생각해 본 적이 없다. 왜 집에 들어갔을 때 엄마가 화분을 보고 있거나, 열대어를 보고 있으면 안정과 평화를 느끼는지에 대해서. 시간을 두고 생각해보니 정확히는 그 풍경, 화분과 열대어가 평화의 상징이어서가 아니었다.

“엄마가 무슨 일이 있으면 엄마는 방에 들어가 계시니까요. 엄마가 방 안에 있는게 아니라 거실에 있다는 건 엄마가 괜찮다는 뜻이예요. 엄마는 스트레스를 받거나 무슨 일이 있으면 안방 문을 닫고 들어가서 안 나오시거든요. 안방 문은 항상 열려있는데, 엄마의 상태가 좋지 않을 때에만 닫혀있어요.”

“문이 닫혀있을 때 어떻게 했어요?”

“문에 귀를 대 봐요. 안에서 무슨 소리가 나나…… (문을 열고 들어갈 수는 없어요?) 아뇨, 들어갈 수 있어요. 문 열고 엄마한테 물어봐요. ‘무슨 일 있어?’ 그러면 엄마는 문 닫고 나가라고 해요. 그럼 나와요. (나와서는 어떻게 해요?) 제가 할 수 있는 건 없으니까 그냥 저 할 거 했어요. 게임하고 뭐……. 무슨 일이 있냐고 물어는 봤으니까. 내가 할 수 있는 최대한을 일단 난 했으니까.”

닫혀있는 안방 문에 대해서 진지하게 생각해 본 적도 없고, 내가 그 상황을 겪을 때마다 이상하다고 생각한 적도 없다. 그저 엄마가 혼자 있고 싶은가 보다- 정도만으로 받아들였던 것 같다. 그러나 선생님은 다르게 보시는 것 같았다.

그 외에 아빠와 엄마의 불화에 대해서 이야기를 했고 담담한 태도로 ‘나는 별로 신경이 쓰이지 않았다.’ 는 식으로 말을 하는 나에게 선생님은 이렇게 말씀하셨다.

‘분노가 보이지 않는 것이 신기하다. 충분히 자녀로서 분노할 수 있는 상황임에도 불구하고 분노하지 않는다. 더 유년시절까지 들어가보는 것이 좋겠다.’

그리고 선생님은 시간이 나면 읽어보라며 ‘독이 되는 부모 되지 마라.’ 라는 책을 권유해 주셨다. 다 읽을 필요는 없고 사례 모음이므로 목차를 보고 읽고 싶은 부분만 읽으라는 말씀이었다. 그래서 서점에 가서 책을 찾아 목차를 훑어 보았다. 내가 ‘페어렌털 차일드’ 라는 것에 대해서는 이미 지난 상담을 통해 알고 있으므로 관련한 내용을 쉽게 찾을 수 있었다. 2장 ‘의무를 다하지 않는 무능한 부모’ 였다. 해당 장에서는 아이임에도 불구하고 어쩔 수 없이 어른의 역할을 했던 사람들이 가지고 있는 심리적 병폐 사례가 담겨 있었다. 내가 공감하기엔 그 사례들이 모두 극단적이었다. 가정 환경이 아주 불우하다거나, 부모가 정신적으로 문제가 있거나. 그래서 오히려 치료에 대한 내용이 조금 더 흥미로웠다. ‘부모에게 얽매여있는 삶’을 벗어나는 방법. 내가 부모에게 얼마나 얽매여있는지에 대해 자가 확인을 해 보니 아주 당연하게도 심각할 정도로 내가 아닌 ‘부모’에 의한 삶을 살고 있었다. ‘부모에게 어떻게 그런 말을 해?’ ‘부모에게 어떻게 그런 행동을 해?’ 이런 강박이 나는 꽤 심한 상태인데 결국은 나를 주체로 받아들이는 과정이 필요하다는 것이었다.

사실 나는 이 상담 치료의 일환으로써 부모님과 대면 하는 상황을 가장 두려워 하고 있다. 선생님께 이 두려움에 대해 고백했더니 내가 원하지 않으면 하지 않는다고 하셨다. 그러나 책을 읽고 나니 아무래도 꼭 필요한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 그렇지만 여전히 내가 할 수 있는가에 대해서는 자신이 없다. 엄마는 당신 때문에 내가 마음에 병을 얻어 치료 받는다는 사실을 견디지 못할 것이다. 엄마가 자책과 자학의 늪에 빠지는 모습을 절대 볼 수 없다. 감당하기 어렵다. 또 한편으로는 나에 대한 자괴감 역시 견딜 수가 없다. 비록 내가 문제가 있다는 사실을 인정하고 상담 치료를 받을지언정……. 당신들에게 자랑스럽고 완벽에 가까웠던 딸이 실은 아니었다는 것을 그분들 앞에서 시인하기가 괴롭다. 나는 늘 든든하게 의지가 되는 딸이었는데 그 역할을 내가 견디지 못했다는 자괴감과 자기비하에 시달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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