슬슬 퇴사한다는 이야기가 주변에 퍼지고 있다보니 여기저기에서 연락이 온다. 사실 퇴사하고 나면 무조건 쉴 생각이지만, 연락 오는것들 보고 있으면 슬그머니 진지해지는 것도 사실이다. 하지만 이대로 곧바로 이직하게 되면 계속 제자리일 거라는 결론을 바꾸지는 못 한다. 지금까지 제법 괜찮은 순발력과 사고력으로 일해 왔다 치자. 그러나 나이를 먹을수록 낡을 수밖에 없는 감각들이다. 그렇다보니 내 안에서 계속 뭔가를 꺼내어 쏟고는 있는데 밑독이 빠지는 느낌이 든다. 그래서 쉬는 것이 1순위이고 그 다음으로는 추가로 무언가 한 단계라도 업그레이드 해서 재취업하고 싶다. 오늘은 G와 이런 저런 이야기를 했는데 확실히 부산에서 지냈다보니 윗 동네가 어떻게 돌아가고 있는지 너무 무감각하게 살았다. 냉동인간 되었다가 깨어난 느낌. 그리고 퇴사하고 나면 정말 공부를 해야 한다는 마음을 한 번 더 다지게 되었다. 어학 연수까지 고려중일 정도로 어학에 대한 욕심도 있고, 데이터 에널리틱스도 실무를 통해 어영부영 익힌 지금보다 조금 더 전문적인 레벨로 성장하고 싶다.  둘 중 하나를 선택해야 한다면 뭘 선택할 지에 대해서도 고민이 많다. 쉬면서 둘 다 취할 수 있다면 좋겠지만 현실적으로 어려워 보인다. 요즘 집안 사정이 심상치 않게 돌아가고 있어 아무리 나와 분리하고 싶어도 그게 쉽지 않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토록 건강하고 발전적인 생각을 하는 내가, 과연 꿈과 희망대로 백수 생활을 보낼 것인가에 대해서는 또 다른 이야기이다.

건강한 백수 생활을 보내기 위해 하고 싶은 것이 공부 외에도 얼마나 많은가. 책도 읽고, 운동도 하고, 리서치도 해 보고. 그런데 과연 제대로 할 것인가? 안타깝게도 나는 백수 생활을 대비하여 이미 PS4 Pro를 사버렸고 하고 싶은 게임 목록들을 리스트업했으며, 여름맞이 스팀 할인에서도 찜목록에 게임들을 가득 담아두었다. 나는 무언가 흥미로운 것을 발견하면 다른 것들은 다 내팽개치고 거기에만 광인처럼 몰두하는 사람이라는 걸 인정해야 한다. 규칙적인 출퇴근이라는 제약에서 7년만에 벗어나는 내가 과연 스스로를 얼마나 통제할 수 있을지 솔직히 걱정 된다. 이런 걸 걱정하는게 조금 창피하지만 어리석은 내가 가지고 있는 리스크에 대해서는 냉정해져야겠지.

최근 약간 게임에 미쳐있는 상태다. 기실 게임이란 원래 나를 자주 미치게 했기에 새삼스러울 일도 아니다. 트위터를 열심히 하던 시절에는 물리적 여가 시간을 온통 트위터와 그것을 허브로 둔 덕질로 채웠는데, 트위터를 강제로 끊었더니 이제 내가 자의적으로 쓸 수 있는 모든 시간을 게임에 붓고 있다. 지난 휴일을 예로 들면 퇴근하고 집에 가면 곧바로 침대에 들어갈 준비를 해서 누운 다음 플스를 켠다. 게임을 한다. 컨트롤러 붙들고 졸 때까지 게임 하다가 그대로 잠들어버린다. 잠에서 깨어나자 눈도 제대로 못 뜬 상태로 주섬주섬 어딘가에 굴러떨어져있는 컨트롤러를 더듬거리며 찾는다. 그리고 플스를 켠다. 게임을 한다. 이런 내가 백수가 되었을 때 공부를 하겠어?

뚜렷한 일과 없이 시간이 날 것으로 채워져있던 시기들이 인생에 몇 차례 있었는데 결과는 늘 실패였다. 나는 단 한 번도 그 꿀 발려진 거대한 시간 알맹이를 온전한 내것으로 만들어 섭취한 적이 없다. 언제나 겉만 핥다가 이도 저도 아닌채로 나가 떨어지고야 말았지. 그래서 솔직히 이번 백수 생활도 크게 자신 있지는 않다. 어떻게 해야 완벽하게는 고사하고 성숙한 인간답게 휴식기를 보낼 수 있을지 생각이 더 필요하다. 아무래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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