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 포스트의 사진들은 보정을 하나도 안했다.

 

발길 닿는 대로

관광스팟은 구시가지에 몰려있지만, 나는 아예 라틴 다리를 건너 반대편으로 가 보기로 했다. 딱히 큰 이유는 없었고 다리 건너의 성당과 양조장 볼겸 해서. 이제와 돌이켜 보면, 시간이 넉넉한 게 아니라면 그다지 가볼 필요는 없는 것 같다. 어쨌든 신시가지의 커피숍에 있던 나는 구시가지쪽으로 향했다.

왔던 길을 그대로 되돌아간다. 


공원도 한적하고 좋았지만 비둘기가 너무 많아서 기겁.

길을 걷다 보니, 사람들이 한가운데에 모여있다. 뭔가 싶어서 기웃거려 봤는데 패키지 여행을 온 사람들을 대상으로 가이드가 열심히 무언가를 설명하고 있다. 무슨 이야긴가 싶어 가만히 들어봤더니 바닥에 새겨진 Meeting Line을 기준으로 구시가지와 신시가지가 나뉘어지고 전혀 다른 문화가 펼쳐진다는 것. 과연 내가 걸어왔던 길은 신식의 유럽 풍경이지만 Meeting Line 부터는 터키쉬한 분위기의 구시가지의 길로 돌변한다. 보스니아가 서로 다른 세개의 종교를 기반으로 모자이크와 같은 도시라는 게 실감난다.


Meeting Line


Meeting Line부터 달라지는 길의 모습.

전혀 다른 두개의 도시를 잘라다가 붙여놓은 것처럼, Meeting Line부터는 분위기가 확 달라졌다. 초입에서 조금 두리번 거리다가 그냥 밀랴츠가 강가로 빠져 나왔다. 관광객이 득실득실한 곳은 저녁에 돌아봐도 괜찮지만, 강 건너는 메인 관광지가 아니기 때문에 날이 밝을 때 후딱 다녀오는 게 좋겠다는 생각에.


라틴 다리

세계 1차 대전을 발발시킨 유명한 다리, 라틴 다리를 발견한다. 트레블러 호스텔이 바로 이 앞에 있기도 하다. 라틴다리 바로 앞에는 뮤지엄이 있는데 (위 사진 속 분홍색 건물 1층) 휴관이길래 다음 날 가기로 했다. 역사적인 다리인 만큼 그 앞에서 좀 오래 어슬렁거렸다. 자세히 들여다 보아야만 찾을 수 있는 흔적이 있을까 봐. (없더라.) 나 말고 근처에 있는 관광객들은 대부분 커다란 카메라를 들고 다니는 1인 여행자였는데, 이 사람, 저 사람 눈치를 보다가 적당해 보이는 사람에게 사진 한 장을 부탁했다. 그 사진이 내가 여행 중 지나가는 사람에게 처음 사진을 찍어달라고 한 사진.

길을 건너 올라온 나는 난관에 부딪혔다. 도저히 길을 찾을 수가 없는 것이다. 나름 지리적 감각이 있다고 생각했는데, 도저히 납득되지 않는 길이었다 -.-;  핸드폰이 인터넷이 안 되니까 이렇게 어렵구나. 결국 지나가는 사람들 붙들고 성 안토니오 성당의 위치를 묻고 물었지만 알려준 데로 가 보아도 성당이 나오지 않는다. 분지형인 사라예보는 도시를 관통하는 밀랴츠카 강에서 멀어질수록 지대가 높아질수밖에 없다. 이곳저곳 오르막길을 쑤시듯 오르내리니 꽤 힘든 와중에도, 건너 편에 보이는 산등성이의 작은 집들이 귀엽고 예쁘다. 아래의 사진들은 내가 정처없이 방황하며 만난 것들.

강가에 있던 공원에 세워진 지도. 이 지도도 솔직히 ……


처음 들어가 본 모스크


모스크의 분위기가 엄숙해서 쫄아서 사진 별로 못 찍음 

사라예보 로컬 맥주 양조장

결국 경찰의 도움을 받아 가고 싶었던 성 안토니오 성당을 찾긴 했는데, 어찌나 허탈하던지. 몇 번이고 그 앞을 지나쳤지만 내가 차마 성당이라 생각하지 않았던 건물이었다. 그때 내가 얼마나 기분이 나빠졌으면 사진 한 장 안 찍었을까(;) 위 사진의 양조장 근처에 있다. 이 동네를 돌아다니며 좋았던 것 한 가지는, 관광 지구가 아니기 때문에 정말 사라예보 사람들이 살고 있는 동네를 누볐다는 것밖에는 없다. 돌아다니는 사람도 적고 집들은 대부분 낡았다. 딱히 신기하거나 특이한 것도 없고 이제 볼일이 없는데도 한참을 돌아다녔다. 스프레이로 낙서가 가득한 폐건물의 유리창을 거울 삼아 머리를 묶었던 것이 생각난다.

옐로 포트리스와 내전 흔적

다시 밀랴츠카 강변으로 나왔다. 구시가지쪽으로 되돌아가 사라예보를 내려다 볼 수 있는 언덕을 올라야 한다. 별거 없어서 꼭 들르는 곳은 아닌 것 같지만, 어느 도시든 높은 곳에서 내려다 보는 것을 좋아하기 때문에 해가 지기 전에 필수적으로 올라야 할 곳이었다.  강변으로 내려오자, 길 건너에 국립 도서관이 보인다. 원래는 시청이었던 건물이란다. 건물의 건축양식이 특이해서 유명하다고 했다.


국립 도서관

한국의 국립 도서관에 비하면 사실 무척 작은 규모이지만, 내부도 독특하다고 해서 들어가볼까 하다가 그냥 앞에서 사진 한 장 찍고 귀찮아서 그냥 지나쳤다. 산을 오르는 것이나 다름 없었기 때문에, 산등성이에 아무렇게나 만들어진 복잡하고 작은 길들이 지도를 보니 영 심상치 않았다. 그래도 오르다보면 어떻게든 되겠지 하고 태평하게 걷기 시작했다. 그리고 그제야 나는 미처 발견하지 못 했던 것들을 보게 된다.

폐 건물이 많았다. 사람이 살고 있는 집들도 있었지만, 유리창이 깨지고 벽이 무너져있고 포탄 자국이 있는 그런 건물들을 숱하게 지나쳤다.

아, 내전의 흔적이 아직도 이렇게 많이 남아있구나.

보스니아 내전은 1992년 발발했다. 간단하게는 유고연방으로부터 독립하고자 했던 보스니아와 독립을 허용하고 싶지 않았던 세르비아의 마찰 때문에 발생했다. 세르비안, 보스니안, 크로아티아계 사람들이 이웃으로 맞대고 살던 사라예보 내부도 쪼개져 수많은 무슬림들이 학살당했다. 보스니아 사람들이 세르비아를 증오하는 것도 그 이유다.

그래서 이 하얀 비석들이 빼곡히 세워진 공동 묘지를 발견했을 때 탄식이 절로 나왔다. 5만 명에 가까운 사람들이 죽었다고 한다. 비석들을 하나하나 들여다보니 1992년, 1993년에 사망한 이들이 많았다. 이 묘지를 시작으로 나는 보스니아에 머무르는 동안 유사한 묘지들과 많이 마주쳤다. 사라예보만 해도 길과 건물이 있는 공간만 아니라면 무조건 이런 묘지가 크든 작든 자리잡고 있었다.

위에서 내려다 보며 사진을 한 번 더 찍었다. 뾰족한 순백의 비석들은 보통의 묘지들처럼 을씨년스럽기는 커녕 참담하고 가슴 아프게 하기만 한다. 눈에 보이는 풍경이 평화로워 더 슬프다. 1992년이면 그리 먼 과거도 아니다. 한국에선 서태지와 아이들이 데뷔했다. 사라예보에서 나를 스쳐지나갔던 관광객을 제외한 성인들은 모두 전쟁의 생존자인 셈이다. 살아남은 사람들이다. 표면적으로는 전쟁이 종교간의 대립처럼 보여도, 종교에 대한 신앙과 민족성이 전쟁에 이용하기 쉬울 뿐이지, 권력을 향한 이기심이 가장 나쁘다.


Stari grad 입구

조금 더 헤매다가 스타리 그라드 입구를 발견한다. 이곳이구나! 싶어 들어갔지만 사실 엉뚱하고도 깊고 높은 마을로 들어가기만 할 뿐, 내가 찾는 옐로 포트리스로 가는 길은 아니었다. 가파르고 좁은 마을 길을 한참 오르는 동안 그곳 주민인듯한 사람이 나를 좀 이상하게 쳐다봤다. 관광객이 들어서는 곳이 아니었기 때문인듯 하다.


이거 뭐였는지 기억이 안 난다(;)


드디어 발견한 옐로 포트리스 입구

엉뚱한 곳으로 하염없이 등반하지만 않았어도, 여기까지가 그리 힘들지 않았을텐데. 생각보다 낮은 곳에 위치해있어 더 허탈했으나(;) 그래도 도착했다는 것에 기쁜 마음으로 입구로 올라갔다.


입구에 들어서자마자 보이는 풍경

그래도 전망 보는 곳이라고, 탁 트인 전경이 보인다. 넓지 않은 공터인데 나 말고도 여러 여행객들이 자리잡고 쉬고 있었다. 하나 있는 작은 카페에서 음악도 틀어놓았다. 참고로 카페에서 술은 팔지 않는다. 무슬림 지구이기 때문인가? 아날씨는 말은 편이었지만 스모그가 좀 있어서 시야가 멀리까지 선명하진 않았다. 그래도 아기자기한 사라예보를 둘러보기엔 충분했다. 어떻게 이곳에서 그런 전쟁이 일어났을까……. 그때 생긴 상처들이 아직도 다 아물지 않았을텐데…… 생각하며 휴식을 취했다. 바람이 선선히 불어서 적당하고 좋았다. 아래는 옐로포트리스에서 내려다 본 사라예보의 모습이다.

갈증에 시달렸기 때문에 생수 하나 사서 앉아 노래 몇 곡 들으며 쉬다가 옐로 포트리스를 내려갔다. 이제 아까 보았던 Meeting Line을 기준으로 동쪽, 올드타운의 일대 중 가장 관광객이 붐비는 바슈카르지아로 내려가기로 한다. 트레블러 호스텔에서 안내 받길, 그곳에 레스토랑이 많으므로 전통 음식을 먹고 싶다면 바슈카르지아의 베지스탄에서 식사를 하는 것이 좋다고 추천 받았기 때문에 내려가서 저녁부터 먹기로 했다. 옐로포트리스까지 빙빙 돌아 올랐던 것과 달리, 내려가는 것은 쉬워서 금방이었다.

 

저녁 식사, Cevapi

저녁 식사를 위해 트립어드바이저의 도움을 받고 싶었지만 핸드폰 인터넷이 안되는 관계로(…) 그냥 아무데나 들어갔다. 종일 거의 아무것도 먹지 않았기 때문에 배도 많이 고팠고, 레스토랑 거리에 있는 가게들간에 맛 차이가 나봤자 얼마나 나겠나 싶었다. 그리고 언제나 이야기하는 거지만 나는 미각이 둔하기 때문에 웬만하면 다 맛있다. 이탈리안 레스토랑도 있었지만, 햄버거나 피자를 먹고 싶진 않아서 생소한 음식명이 야외 메뉴판에 적혀있는 레스토랑에 들어갔다.


레스토랑들이 줄지어 있다.

성수기에 사람이 많을 때엔 이 야외 테이블에서 다들 물담배를 피운다고들 하던데, 아무래도 비수기이다 보니 텅텅 비어있다.

내가 들어선 레스토랑 역시 사람이 단 한 명도 없었다(…) 어디든 사람은 없어 보였기 때문에 그러려니 하고 적당한 구석에 자리 잡고 앉았다. 메뉴판을 보다가 웨이터에게 추천해달라고 하자, 보스니아 전통 음식인 Cevapi(체바삐)를 추천해주었다. 그게 뭐냐고 했더니 빵 안에 다진 고기랑 양파랑 뭐 등등이 들어있단다. 네, 그거 주세요. 하고는 버섯크림스프와 사라예보 맥주도 한 잔 주문했다.

그렇게 처음 먹게 된 Cevapi는……. 기대와 달리……. 그냥…… 그랬다……. 내가 음식 먹을 때 그나마 좀 민감한 게 하나 있다면 ‘짜다/안짜다’ 인데, 이건 좀 짰다. 음식을 아주 싱겁게 먹는 편도 아니지만 너무 짰다…….. 그래도 버섯크림스프는 괜찮았고 맥주 맛도 좋았다. Cevavpi는 혼자 먹기엔 양이 많아서 아마 한 1/4 정도는 남겼던 것 같다. 레스토랑에서 wi-fi를 제공하길래 그제야 핸드폰으로 카카오톡도 하고, 인스타그램에 사진도 올리고, 담배도 피우며 레스토랑을 혼자 전세낸 사람처럼 시간을 보냈다. 참고로 Cevapi는 7마르크. 한화로 4,200원 쯤. 한참을 여유 부리다 레스토랑을 나서니 벌써 해가 져서 캄캄하다. 이제 본격적으로 베지스탄을 싸돌아다니기로 한다.

베지스탄

잡화점들이 잔뜩 모여있는 거리는 터키쉬 분위기가 물씬 풍긴다. 그리고 사람이 상당히 많았는데 드디어 지나치는 한국어들을 듣게 됐다. 사라예보에도 패키지로 많이 오는 모양이다. 다만 내가 다녀온 옐로 포트리스 그런 곳보다는 올드타운을 중심으로 스치듯 지나가는 모양. 중년의 어른들로 이루어진 패키지 관광객 무리를 몇 번이나 마주쳤다. 아마 크로아티아로 여행가는 사람들이 늘면서, 보스니아의 사라예보나 모스타르도 들르는 모양이다. (사라예보보다 모스타르에 관광객이 훨씬 많았다. 두브로브니크와 가까워서 그런 걸거다.) 알록달록 반짝반짝 한 잡화들을 구경하느라 한참 시간을 보냈다. 가격이 너무 저렴해서 안타깝기도 했다. 세르비아도, 보스니아도 전쟁으로부터 경제가 온전히 회복되지 않았기 때문인지. 사고 싶은 것은 많았지만 짐이 늘어나는 것을 원치 않았기 때문에 구경만 했다.


그래도 여기에서 귀여운 사라예보 마그넷을 샀다.

가지 후스레프베그 모스크 / 뮤지엄

돌아다니다가 발견한 ‘가지 후스레프 베그 모스크(Gazi Husrev-beg mosque)’는 규모도 크고 아직도 종교적인 역할을 수행하고 있으며 발칸 10대 모스크 중 하나라고 한다. 예배당 뿐만 아니라 학교도 있고 큰 건물들 여러개가 모여있다. 전쟁으로 파괴되었었지만 다른 이슬람 국가들의 도움으로 복구가 되었다고. 한밤중에 찾았기 때문에 내부에 들어가 볼 수는 없었다. 내부 방문을 위해서는 정해진 시간이 있었는데 되면 들어가고 아니면 말고(…) 식의 마인드여서 그냥 외관만 휙 둘러 보았다.


이 분수는 상당히 아름다운데, 기도전 손과 발을 씻는 분수이다.

이 커다란 모스크는 보스니아에서 가장 유명한 이슬람 사원 중 하나인만큼, 뮤지엄도 하나 딸려 있다. 기웃거리다가 들어갈 수 있길래 들어가 보았다. 3마르크 정도의 입장료를 내고, 안내에 따라 영상부터 하나 보게 된다. 오스만투르크 지배 당시, 사라예보를 통치하게 된 가지 후스레프 베그는 보스니아의 경제적, 문화적 발전에 상당히 기여한 인물로 결국 성인으로 추앙받게 된다. 그의 일생에 대한 영상으로 영문 내레이션과 자막이 포함되어 있다. 가지 후스레프 베그의 발자취와 당시 사라예보의 문화가 기록으로 남겨져있는 뮤지엄이었던 것이다.


영상을 홀로 우두커니 앉아서 봤다.

뮤지엄 규모가 꽤 커서 돌아보는데 시간이 좀 걸렸다. 가성비가 훌륭한 뮤지엄이다. 둘러보고 나와서는 또 내키는대로 걷기 시작했다. 그러다 보니 신시가지까지 또 넘어가게 되더라. 낮에 갔던 곳임에도, Meeting Line을 지나치자 또 다시 확 바뀌는 풍경이 영 적응이 안 된다. 타임워프 하는 기분이랄까.


미친듯이 춤을 추던 남자…… 음악을 자기만 헤드폰으로 듣고 있는 것이 포인트다.

로칸 카톨릭 대성당의 오픈 시각을 확인하고, 그 역시 내일 방문하기로 마음 먹는다. 조금 더 가면 정교회 성당이 있기 때문에, 그것까지 돌아보는 것을 마지막 일정으로 정했다. 로만 카톨릭 성당보다 훨씬 큰 정교회 성당은 낮에도 보았던 공원 바로 옆에 있다.

들어가보고 싶었지만 역시나 못 들어가길래 바깥만 빙빙 돌며 커다란 성당의 위용에 감탄했다. 건물 굉장히 근사하더라고. 고질적인 수전증 때문에 야간 사진의 퀄리티가 좋지 못함이 아쉽다. 성당 바깥에서 열심히 구경하는데 누가 나를 툭 쳐서 화들짝 놀라 돌아보니, 키가 내 가슴께도 안 오는 조그만 꼬마애가 담배를 피우며 1마르크만 달라고 한다. 1마르크면 우리나라 돈으로 600원이다. 그래서 별 생각 없이 주려다가, 1마르크를 준다 해도 녀석이 거기에서 그칠 것 같지 않고 분위기가 영 심상치 않았다. 미안해, 돈 없어. 라고 말하고 자리를 떴는데 끈질기게 따라왔다. 정말 돈 없다고 오히려 내가 녀석에게 사정사정을 하고 나서야 담배를 신경질적으로 버리고 돌아갔다. 1 마르크, 줘야 했을까?

술을 좀 마시고 싶었다. 묘지들을 보고 나서부터 생각이 많아졌던 나들이다. 그러나 웬만한 술집들이 문을 닫았고 술을 마시기 위해서는 꽤 시내로 나가야 하는 것 같길래 그냥 포기했다. 생각해보니 오늘은 내가 여행자다운 일정을 소화한 첫날이었다. 베오그라드에 있을 때와는 달리 나름 최선을 다해 빨빨거리고 돌아다녔으니까. 내 체력을 그만 과신하고 돌아가 쉬기로 했다.


밤의 라틴 다리

호스텔로 돌아오자 쉬고 있던 마호매트와 다른 숙박객들이 키친에서 포커를 친다. 내게도 같이 하겠냐고 물어서 일단 씻고 오겠다고 대답했다. 방에 들어와 정리를 좀 하고 샤워를 했더니 급 노곤해진다. 포커를 치는 무리들에게 나 빼고 하라고 이야기 하고는 그냥 침대로 기어올라갔다. 같은 방에 있던 네덜란드, 벨기에 남자애들이 내게 이것저것을 물어서 누워서 대답하고 이야기 하다가 어느 순간 잠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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