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전에 3개월 좀 안 되게 탁묘했던 때를 떠올려 본다. 집에 오면 현관문을 열며 이름을 부른다. 갓 우리집에 왔을 때엔 침대 밑에만 숨어있던 녀석이 언제부턴가 현관으로 마중을 나왔다. 안아 들고 코끝을 맞대는 인사를 했다. 당시 내가 살던 집은 지금 사는 집 크기의 두 배는 되었다. 고양이 용품을 둘 만한 공간도 넉넉했다. 이 녀석이 혼자 있는 동안 사고를 치진 않았나 둘러본다. 대부분 별 일 없었다. 사료를 확인하고 화장실을 확인하는 것이 그 다음이다. 그 후엔 깃털을 가지고 놀아준다. 활동량이 좋아서 가만히 앉아서 놀아주는 것 가지고는 성이 안 찼다. 어느 정도 놀아주고 난 다음엔 컴퓨터를 켜고 내 할일을 했는데 그러면 꼭 책상 위에 올라와서 방해했다. 레이드 할 땐 (…) 할 수 없이 부엌에 가둬 놓은 적이 있는데, 나중에 다시 문 열 때엔 미안한 마음에 간식을 줬다. 뒹굴거리는 녀석하고 조금 더 놀아주다가 불끄고 자려고 누우면 침대 위로 올라왔다. 내 근처에서 어슬렁 거리다가 옆구리쪽에 누워서 이녀석도 잤다. 아침이 되면 내 몸 위로 올라와서 배나 가슴을 꾹꾹거리며 눌렀다. 일어나라고. 그러면 아침 뽀뽀와 함께 일어났던 것이다.

고양이의 주인은 나의 절친한 전 직장 동료 G이다. G가 결혼을 하게 되었는데, 여자 친구가 도저히 못 키우겠다고 했단다. 결혼을 전제로 만난지 꽤 됐는데 결혼 앞두고 말 바꾸게 된 G의 여자친구가 솔직히 괘씸하다. 결국 G는 그래도 한동안 고양이를 돌본 적도 있고 예뻐해주는 내가 제일 먼저 떠오른 모양이다. 모르는 사람에게 입양시켰다가 무슨 일이 생낄까봐 걱정돼서 잠도 못 이룰 지경이란다. 딸 시집 보내는 마음으로 모든 것을 지원할테니 생각 있냐고 하더라.

아마 고양이와 함께 살면 난 행복할 것이다. 집에 들어가야 하는 이유가 전보다는 강하게 생겨서, 되도록이면 집에도 일찍가려 할테고, 무언가를 돌보고 부양하는 책임은 내 인생의 가장 큰 원동력 아니었던가. 그러나 막상 덥썩 데려오기엔 많은 고민이 뒤따른다. 잠시 맡아주는 것이 아닌, 이 아이의 평생을 책임지는 것이기에 내 인생에 혹시나 모를 변수가 생기지는 않을지. 그리고 집을 종종 비우기 때문에 많이 외로워하진 않을지. (G는 고양이가 워낙 혼자 있는 것에 익숙해져서 걱정할 일은 아니라고 했지만.) 그래도 T는 내 우울증의 근본적 치료에 도움이 되지 않을 것이라 했고 (고양이 키우기는 그저 임시 치료 방편이 될 뿐) 고양이가 외로울 수 있으니 반대했다.

[고양이 키우기의 장점]
1) 마음의 위안이 된다.
2) 자살을 못 하게 된다.

[고양이 키우기의 단점]
1) 고양이 털과 평생을 살아야 한다.
2) 고양이 돌보기와 그에 따른 집 관리의 번거로움과 수고.
3) 이사 할 때마다 반려동물 가능한 집이라는 조건이 추가로 붙는다.
4) 추가 지출이 발생한다.
5) 자살을 못 하게 된다.

게다가 장점에 비해 단점이 너무 많다. 과연 오직 한 가지인 장점이 나머지 모든 단점들을 상쇄할 수 있는가? 보통 이런 판단 시점에서 장점은 실제보다 더 크게 부풀려져 느껴지곤 한다. 그러니 더 냉정하게 생각해야 하지.

 

2 thoughts on “고양이

  1. 키우지마 …. 애완동물이나 아기는 남의 것(?) 짐깐씩 봐주고 오다가다 볼때나 이쁜듯.. 둘다 키우는 순간 번잡스럽고 번거로워지는것같아 흠 그래도 그 꼬마고양이는 성격이 좋었나보다 우리 뚱보는 꾹꾹이나 아는채는 커녕 진짜 왕무시 똥무시 …

    1. 응, 아무래도 나의 불안정한(?) 삶이 고양이의 평생을 보장하기 어려울 것 같다는 생각에 안 키우는 것으로 마음을 정하려 해. 많이 아쉽긴 하지만…

답글 남기기

이메일은 공개되지 않습니다. 필수 입력창은 * 로 표시되어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