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오그라드에서 사라예보까지.

 

알람시계가 필요 없다. 아침 6시반에 또 절로 눈이 떠진다. 알렉스가 이불을 두개나 더 갖다줘서 전날에 비해 훨씬 따뜻하게 잤고, 덕분에 컨디션이 한결 나아진게 느껴졌다. 전날 그랬던 것처럼 조용히 일어나서 나갈 준비, 그리고 떠날 준비를 했다. 라운지에 앉아 좀 기다리다가 8시가 거의 다 되었을 때 자고있는 알렉스에게 다가가 깨웠다. 알렉스, 나 사라예보 가야하잖아요. 알렉스가 눈비비며 일어나더니 조금 더 기다려도 된다고 하고 다시 잔다. 아마 밴이 호스텔 앞에 데리러 오면 알렉스에게 전화가 올 거라고. 그래서 조금 더 기다렸다. 8시가 꽤 한참 지나도 연락이 없어 정말 나 사라예보 갈 수 있는 것인가 하고 의심하기 시작할 무렵, 다행히 알렉스에게 전화가 왔다. 8시 30분 쯤. 나를 소피라고 불렀던 따뜻한 알렉스와 작별 인사를 하고 모자이크 호스텔을 나섰다. 교차로까지 나가니 정말 미니밴 한대가 기다리고 있다. 젊은 세르비안 남자가 내게 손을 흔들길래 알아보고 갔다. 캐리어는 트렁크에 직접 실어준다. 나는 뒷좌석에 앉았는데 웬일로 나 말고 아무도 없다. 나 혼자 타고 가나? 사람이 적게 탈수록 좋으니 혼자 갔으면 좋겠다고 바라게 되었지만 베오그라드 시내를 벗어나기 전 다른 호스텔 앞에서 한번 더 정차를 하고, 남자 한명 여자 한명을 태운다. 그들은 내 뒷좌석에 앉았다. 나까지 포함한 이 세명이 사라예보로 가는 승객의 전부였다.


전형적인 젊은 세르비안의 뒷모습.

전자음이 좀 섞인 신나는 음악을 크게 틀고 달렸는데, 그 음악은 세르비아의 클럽 음악일까……. 영어는 아니었으므로 아마 그럴 것 같다. 중간 중간 유행하는 팝이 섞여 나오기도 했다. 베오그라드를 벗어나자마자 급격히 풍경이 탈도시적으로 변한다. 세르비아의 시골이구나! 알 수 없는 세르비안 노래를 들으며 창밖 풍경을 열심히 구경했다.  중간 중간 사진을 찍기도 했지만 차가 워낙 빨리 달려서 괜찮은 사진은 건지지 못 했다. 한시간 반 가량 달렸더니 국경이 나온다. 한시간 반이 맞는지는 사실 확실치 않으나, 체감상 그쯤이다. 생각보다 국경에 빨리 도착했다고 생각했거든.


여기서부턴 보스니아.

세르비안 기사에게 여권을 주고 잠시 기다렸고, 그다지 오래 걸리지 않았다. 국경을 넘자마자 보이는 작은 주유소에서 잠시 쉬어가자고 한다. 어차피 그건 우리가 정할 일이 아니고 세르비안 기사가 정하는 거라 그냥 그런다고 대답. 차에서 내려 잠시 바깥 공기를 쐰다. 국경 가까이에 있는 보스니아의 작은 마을은 굉장히 조용해 보인다. 휴게소에 있는 편의점에 들어가 음료수 하나를 샀는데, 유로는 받지 않는단다. 하는 수 없이 카드로 결제하고, 휴게소 내의 화장실에도 잠시 들렀다가 나왔다. 세르비안 기사는 편의점 바깥에 놓여진 파라솔 테이블에서 안면이 있는 사람들을 만난건지 어떤 사람들과 함께 앉아 이야기를 하고 있다. 언제 출발하려나. 담배 한대 피우고 차에 다시 들어왔다.


저기 보이는 곳이 국경 검문소


저 bravo라는 브랜드 음료수는 발칸 여행하는 내내 많이 만났다.


사라예보까지 타고간 승합차. 

편의점에 언제 다녀왔는지 모르겠는데, 어쨌든 과자를 먹고있는 뒷좌석의 두 사람과 그제야 통성명을 했다. 남자는 터키인 마호메트, 여자는 호주인 앱. 둘은 일행은 아니고 베오그라드의 게스트하우스에서 만났다고 한다. 마침 마호메트는 나와 사라예보의 호스텔이 같았고, 앱은 다른 곳이었다. 앱은 작고 깡마른 여자아이였는데 벌써 3개월째 여행중이라고 했다. 와우, 부러워. 터키인인 마호메트는 세르비아인과 터키인 간의 사이가 좋지 않기 때문에 세르비아를 떠나게 되어 홀가분하다는 말을 했다. 여행 중에서 무슨 일이 있었던 거냐고 물었더니, 딱히 그런건 아니었지만 마음이 괜히 불안했다고. 그런 수다와 함께 그들이 나눠준 과자를 먹으며 세르비안 기사를 조금 더 기다렸다. 그렇게 주유소에서 대략 20~30분 정도 쉬었던 것 같다. 마침내 돌아온 세르비안 기사는 다시 흥겨운 음악을 틀고 붕붕.


이런 풍경들을 보면서.

한참을 달리다가 이제 본격적으로 차는 산속으로 들어간다. 그런데 얼마 못가서 경찰처럼 보이는 이가 차를 멈춰 세웠다. 뭔가 싶었는데, 우리 차만 멈춰 세우는게 아니라 이미 우리 앞에도 차 몇대가 세워져있었다. 자연스럽게 우리 뒤쪽을 따라오던 차들도 정차하게 된다. 세르비안 기사와 경찰이 주고 받는 대화는 무슨 말인지 전혀 알아들을 수 없으므로 영문을 알 수 없다. 우리에게 조금 기다려야겠다고 지금은 갈 수 없다는 말을 전하는 기사에게 이유가 뭐냐고 물었더니 그가 굉장히 곤란한 표정을 짓는다. 몇번 말을 떼었다가 말았다가 하다가 결국 포기. 그냥 기다리래, 별 일은 아니라고. 아마 영어로 설명하기 어려웠던 모양이다. 어쨌든 심각한 문제는 아닌 것 같아서 또 다시 찾아온 휴식시간을 그냥 즐기기로 한다.


돼지 긔여워.

앱과 마호메트는 차에서 내리지 않았지만, 난 내려서 사진도 찍고 혼자 왔다갔다 걷기도 하고, 쪼그리고 앉아있기도 하고, 담배를 피우기도 하며 시간을 보냈다. 그때 들었던 음악이 아마 태민의 소나타(…)와 그 외 몇 곡. 뜻밖의 휴식을 맞으면서 새삼스럽게 뮌헨 공항에서 시내로 갈 때의 기분이 다시 들었다. 내가 그 자리에 있는 것이 낯선 기분. 어디선가 뚝 떼어져 누군가에 의해 이곳에 놓여진 그런 느낌 말이다. 어디인지도 모르는 곳에서 멀뚱멀뚱 시간을 보내고 있으니 참 신기하다. 벌써 나흘째였는데도 불구하고 여전히 난 그 여행이 내것이 아닌것처럼 느껴진 모양이다. 그러고보니 더 이상 데이터 로밍도 되지 않는다. 보스니아에 있는 시간까지는 SK의 원데이 패스 데이터 로밍을 신청했는데 이 멍청이들이 어떻게 처리한 것인지 모를 일이다. 주유소에서처럼 2-30분 정도 지나자 어수선해지면서 밖에 나와 있던 사람들이 다시 차를 타기 시작한다. 우리의 세르비안 기사도 나를 불렀다. 이제 다시 움직일 수 있나보다. 아기돼지 안녕.

여기서부터 사라예보까지는 정말 산길이었다. 양이나 말이 들판에 풀려있는 고원을 지나, 깊고 큰 협곡을 지나 분지인 사라예보에 들어서게 된다. 그리고 나는 이 여행 중에 내가 보았던 가장 아름답고 뭉클한 풍경을 그 길에서 보았는데 안타깝게도 당연히 사진은 찍지 못 했다. 너무 후회되는 것이 차 좀 세워달라고 할 것을. 빠르게 움직이는 차 안에서 창문에 붙어 바깥을 바라보며, 내가 지금 바라보고 있는 풍경을 절대 잊지 않을 수 있기를 간절히 바랄 수밖에 없었다. 그때 그림을 잘 그리는 사람들이 부러웠던 것 같다. 사진을 찍지 못 하면 기껏해야 점점 희미해질 기억 말고는 그 풍경을 보관할 수 있는 방법이 없다. 그러나 그림을 잘 그리는 사람들은 기억이 생생할 때에 그려서 남길 수 있잖아. 나만 그 풍경이 멋있던 게 아니라서, 앱과 마호메트도 연신 브라보를 중얼거리며 바깥을 바라보았다. 그냥 깊은 협곡이었는데 거기에 조그만 집들이 저 멀리 몇 개 박혀 있었을 뿐이다. 그럼에도 그 풍경이 얼마나 아름다웠는지 글로 묘사하기가 좀 어렵다. 누군가에겐 소박하고 평범할 삶의 터전이 나같은 사람에겐 일생에 잊기 싫은 기억으로 남은 것이다. 만약 베오그라드에서 사라예보로 밴을 타고 가는 사람이 있다면, 꼭 차창 오른쪽에 앉으라고 권해주고 싶다.

그리고 사라예보에 도착. 산골짜기에서 커다란 분지로 접어들자 도시의 형태가 보인다. 그래봐야 작은 도시라, 기사는 우리에게 어느 호스텔이냐고 묻더니 다 꿰고 있는지 그 앞에 바로 세워주었다. 가격은 25유로라고 했다. 20유로밖에 없어서 20유로와 600디나르로도 괜찮냐고 하자 문제 없단다. 그런데 디나르도 600디나르가 채 안된다. 다 털어보니 500디나르 정도. 그래도 괜찮다며 굿럭-이라고 작별인사를 남기고 떠났다.

트레블러 호스텔

마호메트와 내가 숙박하기로 한 트레블러 호스텔은 사라예보의 주요 관광 스팟인 올드타운이나 라틴 다리에서 아주 근접해 있으며, 평점도 몹시 좋은 호스텔이다. 부부인 알렉스가 가정집을 개조해 운영하던 모자이크 호스텔과 달리 멀끔하고 젊은 청년들이 쾌활하게 운영하고 있었다. 리셉션 전용 사무실도 따로 있고 나름 체계적이며 그들도 역시 어마어마하게 친절하다. 내 침대를 안내 받기 위해 룸으로 갔는데, 문을 연 순간 기분이 묘했다. 너무 밝아서(;) 모자이크 호스텔의 도미토리룸은 낮에도 정말 어둡다. 그런데 트레블러는 너무 환하더라. 전반적으로 흰색으로 인테리어 되어있어서 밝고 젊은 느낌이 드는 곳이었다.


내 침대는 제일 안쪽 오른쪽 2층

이곳도 당연히 혼성 도미토리 룸인데, 나와 한 침대를 쓰는 친구만 여자였던 것 같다. 대강의 짐을 정리하고 호스트에게 다시 찾아갔다. (오라고 했음) 그러자 지도를 펼쳐 이것저것들을 설명해준다. 올드타운, 라틴 다리, 가톨릭 지구, 옐로 포트리스, 레스토랑들은 어디에 많고, 뭐 그런 것들 기타 등등. 그리고 모두 걸어서 갈 수 있다고. 아마 골백번을 반복했을 그 간단 사라예보 투어 가이드를 모두 듣고 지도를 챙겨 나왔다. 곧바로 나갈 생각이었다. 사라예보에서는 1박밖에 예정하고 있지 않았기 때문에, 해가 떠 있는 시간을 최대한 활용할 생각이었다. 마호메트에게 나갈 생각이 있냐고 물었더니 피곤한지 낮잠을 잔다고 한다. 하긴, 마호메트는 사라예보에 꽤 오래 머무를 계획이랬으니 굳이 곧바로 나갈 필요 없겠지. 가만 보면 여행하며 만나게 된 유럽인들은 대부분 여행을 느긋하게 즐기는 편이었다. 나도 느긋하긴 한데 그들은 나보다 훨씬 더.

어쨌든 트레블러 호스텔도 워낙 평점이 좋았던 만큼, 무엇하나 모자란 것 없는 곳이긴 했다. wi-fi가 좀 끊기긴 했지만 다른 숙소들과 비교해보았을 때 그 정도면 그냥 평균이다. 한국 수준이었던 모자이크 호스텔이 별종이었다. 호스트들이 젊기 때문에 특정 요일 밤에는 파티나 이벤트도 함께 적극적으로 하는 것 같더라. 오래 머무른다면 이것저것 재미있는 경험을 많이 만들 수 있는 곳 같았다.


사라예보 로만카톨릭 대성당이 저 끝에

호스텔에서 나와 뒤쪽으로 난 길을 따라간다. (사진) 어디어딜 갈지에 대해서는 생각도 안하고 무턱대고 나온 거라 일단 어디 들어가서 정리를 하고 싶었다. 그래서 마음에 드는 카페를 찾을 때까지 그냥 걸어보기로 한다.

해가 뜨고 있어 거리에 사람이 많다. 나는 올드타운과는 반대 방향으로 걸었는데, 그렇다보니 관광객보다는 현지인이 더 많아 보였다. 세르비아보다는 조금 더 작고 소박한 느낌이 든다. 보스니안들이 더 순박하다고 하던데 반영된 건지. 사라예보가 베오그라드에 비하면 훨씬 작기 때문일수도 있고. 걷다가 환전소를 발견해서 그제야 아 맞다! 나 돈 없지! 하고 환전부터 했다. 곧바로 카페에 들어갔으면 카드결제 할 뻔했어. 50유로를 환전하고 95마르크를 받았다. 보스니아는 조금 편한게, 유로와 마르크가 거의 1:2 정도의 비율이라 모스타르 같은 관광지에서는 유로도 사용할 수 있고 계산도 쉽다. 마르크를 채운 지갑을 들고 제일 처음 눈에 들어오는 조용한 카페에 들어갔다.

보스니아 동전 좀 예쁨

카페에 들어와 커피, 그리고 호두파이 조각 하나를 주문하고 자리에 앉았다. 여전히 핸드폰은 인터넷이 먹통이고, 안타깝게도 카페는 와이파이가 되지 않았다……. 그래서 일단은 호스텔에서 받아온 지도를 펼쳐놓고 책을 꺼냈다. 내가 갖고 있는 책이 관광 가이드는 아니지만 책에서 서술 된 인상적인 장소가 있다면 지도에 체크해 놓을 생각이었다. 볼펜도 없어서 카페에서 빌렸다(;) 하지만 책도 그다지 동선 짜기에는 도움을 주지 못 했다. 저런. 그나마 도움이 되었던 것이 CityMaps2Go 라는 어플인데, 미리 도시의 지도를 다운 받아놓고 네트워크 연결이 안 된 상태에서도 GPS만을 이용하여 활용할 수 있는 기본 기능에, 주요 관광지 표시가 잘 되어있다. 물론 모두 영어이지만. 어쨌든, 호스텔에서 받아온 지도는 아무래도 간략한 지도이다보니까, CityMaps2Go를 열고 비교해보면서 갈만한 곳을 표시했다.

그래서 결정한 건 카톨릭지구로 넘어가 성당 구경 하고, 보스니아를 내려다볼 수 있는 옐로 포트리스에 올라갔다가, 올드타운으로 내려와서 저녁 먹기. (지도 보면서 탐구한 것 치고는 별거 없는 동선) 그래도 내가 관광 스팟들에 크게 연연하는 성격이 아니고 작은 골목길 돌아다니는 것을 더 좋아하는 사람이니 이 정도면 충분하다. 사라예보 돌아다니기는 이제 다음 포스트에 이어써야겠다. 사라예보 하루밖에 안 있었는데, 뭐 이리 많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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