잠에서 일어나니, 도미토리 안의 다른 친구들은 세상 모르고 잔다. 라운지로 나와 큰길 쪽으로 난 창문이 아닌, 다른 창밖을 보니 위와 같은 풍경이다. 마음에 들어 한참을 별 생각없이 구경했다. 알렉스가 잘 잤냐고 물어서 조금 추웠다고 하자 왜 당장 말하지 않았냐면서 내 침대에 이불을 두 개나 더 가져다 주었다. 오늘 밤에도 추우면 다시 이야기 하라고 했다. 라운지에서 담배를 피우며 오늘은 뭘 할까 생각하는데, 마크가 2등으로 일어나 라운지로 나왔다. PUB CRAWL은 어땠냐고 물어보자 마크와 조도 하지 않고 그냥 펍 한군데에서 술 조금 마시다 들어왔다고. 앉아서 이런 저런 얘기를 하다가 마크가 게임을 하자며 메모지에 끄적인다. 그래서 메모지에 이런저런 낙서 게임을 하고, 한글의 구조를 가르쳐 주기도 하면서 놀았다. 한글이 자음 모음으로 모두 분리되어 있는 것에 마크가 엄청 신기해했는데, 내가 한글로 써준 자기 이름이 귀여워 마음에 들었는지 따로 써달라고 하길래 다른 메모지에 마크 이름만 써서 챙겨주었다. 오늘 뭘 할까 이야기 하다가, 함께 칼레메그단 요새부터 가보기로 했다. 다들 어슬렁어슬렁 하나둘씩 일어날 때 쯤, 키친에 조식이 준비되어 간단하게 먹고 호스텔을 나섰다.

OX 게임, 행맨, 한글 공부

칼레메그단 요새

전날 그렇게 비가 오더니만, 배신감 느낄 정도로 날씨가 좋아졌다. 다행이었다. 어두컴컴할 때에만 보았던 베오그라드의 풍경을 환한 오전에 보니 빈티지한 유럽 느낌이 좀 난다. 조는 오늘 루마니아로 갔을 거라기에, 사실 나도 루마니아에 가는 것을 고민했다고 하자 마크가 안가길 잘했다며 크로아티아가 훨씬 좋을 거라고 말해주었다. 한적한 크네즈 미하일로바 거리를 천천히 걸으며 칼레메그단 요새까지 갔다.


이 길을 건너면 칼레메그단 요새 앞 공원에 이른다.

공원이 제법 컸다. 안에 기념품 판매 노점도 있길래 조금 구경을 했다. 칼레메그단 요새는 사바 강과 도나우 강쪽을 등지고 지어져있다. 옛날 비잔틴이 지었다고 하던데, 요새는 숱하게 겪었던 전쟁을 훈장처럼 전시해 놓았다. 안에 전쟁 기념관도 있다고 하길래, 우리는 전쟁 기념관도 가보기로 한다.


공원을 걸으면서 또 한국어놀이 함. 

입구까지 가는 길, 요새의 벽이 꽤 높았다.


요새 입구, 지금은 공원의 일부이기 때문에 따로 입장료는 없다.

요새 안은 이렇게 아주 당연하게도 여러 군사 장비들을 전시해 놨다. 나는 사실 이런 것엔 별로 관심이 없지만, 마크는 꽤 유심히 들여다 보곤 했다. 기념비 같은 것을 발견하고 이게 뭘까 하며 보기도 했는데, 당연히 키릴문자로 써있었기 때문에 무엇인지 알 수 없었다. 마크가 더듬더듬 읽기는 했지만 읽을 수만 있을 뿐이지, 뜻은 자기도 모른다고 했다. 흑흑. 요새의 뒤쪽은 사바 강과 도나우 강의 두물머리를 볼 수 있어 그쪽으로 걸음을 옮겼다.


두물머리

북쪽에서부터 내려오는 강이 도나우 강, 그리고 서쪽에서 올라오는 강이 사바 강(일 것)이다. 구름이 좀 껴있긴 했지만 풍경이 근사했다. 아마 저 강 너머가 제문일텐데, 알렉스가 그렇게나 추천한 지역이지만 가지 못한 것이 아쉽다. 아래쪽으로도 공원이 조성되어 있고, 선착장도 있었다. 아마 선착장에서 작은 유람선을 탈 수 있는 듯 하다. 우리는 그렇게까지 할 생각은 없었다. 요새 벽 위에 올라 서서 멀리, 더 멀리 보려 애써 보았다. 각자 이곳에서 독사진도 찍고, 함께 셀카도 찍으며 시간을 보냈다.


갑자기 펼쳐진 탁 트인 풍경이 너무 좋았어.

마크, 참 괜찮은 녀석이었던게 대화가 필요할 때와 필요하지 않은 때를 구별할 줄 아는 사람이었다. 함께 풍경을 바라보며 쉴 때에 마크는 불필요한 이야기를 하지 않았다. 그냥 같이 멍때려 줄 수 있는 사람이었던 것이 몹시 마음에 들었다. 내 영어 발음을 영국식으로 교정해주는 것도 나름 재미있었고. 어쨌든, 강변을 구경하고 전쟁 박물관으로 향했다. 세르비아가 워낙 전쟁이 많았던 곳이기 때문에 전쟁 박물관을 살짝 기대하기도 했다.

전쟁 박물관을 밖에서 보고는 별로 크지 않다고 생각했는데, 내부는 꽤 크고 깊다. 사실 우리는 입구에서 몹시 헤맸다. 문이 안 열려서 안에 기웃기웃 거리기도 하고, 반대쪽으로 돌아서 가보기도 하고 별 짓을 다했는데 그냥 … 그냥 … 문이 닫혀있던 것이었다(;) 평소에 관람객이 별로 없는 것인지 ‘누가 왔으니까 문 열어준다.’ 이런 느낌으로 문 열어주고 티켓을 끊어주더라. 그래서 우리는 박물관 안에서 어떤 꼬마와 그의 아빠로 보이는 두 명밖에 마주치지 못 했다. 전쟁 박물관의 전시품들은 진짜 정성스럽고 상세했는데……. 진짜 안타깝게도 설명이 잘 되어 있지 않았다. 물론 그들 언어로는 상세히 써있었지만, 한국어는 당연히 기대도 안하고 영어로라도 좀 준비가 되어있으면 좋았을텐데. 영어 코멘트가 있는 전시품도 있었지만, 없는 것도 많아서 좀 안타까웠다. 영어 코멘트가 없는 것들은 마크와 함께 도대체 이게 뭐지? 하면서 추측하기도 하고(;)  그래도 세르비아의 전쟁사를 상세히 알지는 못하지만, 이 호전적인 민족의 억울함과 전력에 대한 자부심은 크게 느껴지더라. 특히 1차 세계 대전 부분 몹시 흥미로웠고. 그 이전의 자잘했던 전쟁 역사도 상당히 잘 기록되어 있는 편이다. 전시품이 많아서 꽤 긴 시간 관람했다. 조용히 관람할 수 있어 좋았다.

사진을 찍을 수 있어서 몇 장 찍긴 했는데, 실내가 어두워서인지 제대로 찍힌 게 거의 없다.


나는 이런 인포그래픽 같은 지도들이 재미있었다.

산책 겸 공원을 좀 더 둘러보고 벤치에 앉아서 두런두런 이야기도 하다가 점심을 먹기로 한다. 그래서 칼레메그단에서 빠져나온 우리는 딱히 뭘 먹을지 정하지는 않고 길을 걸으며 적당히 먹을 것을 찾았다. 나도 그리 대단한 걸 챙겨 먹고 싶진 않았고, 마크는 애초에 그런 것에는 별 관심이 없어 보였다. 시간이 정오에 가까워지자 길에 사람들이 어느새 많이 나와있었다. 벌써부터 테라스에 앉아 브런치를 먹거나 커피를 마시거나… 동양인과 서양인의 차이에 대해 이야기를 했는데 한국인/중국인/일본인을 외모만 보고 구별할 수 있냐길래 대충 가능하다고 대답했다. 마크가 신기해하면서 자기는 구별할 수 없다고 한다. 당연하지…… 넌 그럼 영국인 프랑스인 독일인 얼굴 보면 구별 못 해? 그러니까 할 수 있대. 것 봐……. 참고로 마크는 정말 전형적인 영국인 외모였음.

어쨌든  우리가 점심으로 먹은 건 뭐였냐면 바로 핏짜! 패스트푸드점 같이 생긴 피자집에서 페퍼로니 피자 한판을 샀다. 앞에 있는 테이블에 내려놓고 먹었는데 가격을 계산해보니 한화로 6000원 정도다. 아무리 저렴이 피자라고 해도 그렇지 이렇게 커다랗다니…… 이름에 상당히 충실한 맛의 피자였는데 ㅋㅋ 너무 커서 마크랑 나는 그 자리에서 반밖에 못 먹고 호스텔로 도로 들고 갔다. 피자를 먹으면서 각자의 여행 루트를 이야기 했는데, 마크와 내 여행 루트가 유사했다. 사라예보를 거쳐 모스타르를 들러 두브로브니크로 가는. 나는 사라예보에 내일 갈 거라고 했더니 마크가 잠시 고민하더니 같이 가는게 어떻겠냐고 했다. 마크는 사실 나보다 하루 늦게 출발할 생각이었던 것 같지만, 딱히 베오그라드에 더 머무르지 않아도 될 거라고 생각했는지. 마크와 같이 다녀서 나쁜 건 없으니 좋다고 했더니, 사라예보에서 내가 숙박하는 호스텔을그 자리에서 곧바로 마크도 예약해 버렸다.


나중에 보니까 다른 사람들이 다 먹고 없더라고.

사라예보에는 어떻게 가야할지 고민을 좀 했는데, 베오그라드와 사라예보를 왔다갔다 하는 사설 미니밴이 있다길래 그걸 탈 생각이었다. 물론 아무 예약도 하지 않았지만(;) 마크가 알렉스에게 이야기 하면 도와줄 것 같다고 하길래 우리는 남은 피자를 호스텔에 갖다 둘 겸, 알렉스에게 도움을 요청할 겸 다시 호스텔로 돌아갔다. 마침 알렉스는 호스텔에 놀러온 그의 친구들과 대화 중이었다. 내가 알렉스에게 내일 사라예보에 갈 건데 미니밴을 알아봐 줄 수 있냐고 했더니 알렉스의 친구가 끼어들며 당연히 가능하다고 자기가 잘 안다며 걱정하지 말란다. 내일 오전 몇시에 출발하면 되는지는 나중에 알렉스에게 따로 들으라면서. 그 자리에서 설렁설렁 구두예약(?)이 된 것이 좀 얼떨떨하긴 했는데 그러겠다고 대답했다. 마크와는 이제 어디를 가지? 하고 지도를 들여다보다가 성 사바 성당에 가보기로 한다. 2.4km 정도의 거리로, 내가 전날 터미널에서부터 기어올라왔던 것보다 조금 더 먼 거리이긴 했는데 그 정도야 걸을 수 있을 것 같길래, 우리는 주변 구경도 할 겸 걸어가기로 했다.

그리고 그 2.4km를 걷는 동안 사진을 별로 안 찍었다(;)

다운타운

날씨가 개니 도시의 인상도 달라진다. 나를 처음 맞이했던 풍경은 그렇게나 삭막하고 칙칙했으나……. 마크와 함께 널찍한 대로변을 걸으며 구경하는 베오그라드의 모습은 평범한 유럽의 어느 도시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었다. 도시가 조금 낡았고, 비록 고풍스러운 느낌은 아니었지만 나름의 분위기가 있었다. 사람들은 대부분 활기차고 유쾌하고 친절했다. 내가 막연히 생각했던 딱딱한 세르비안들이 아니었다. 모자이크 호스텔의 알렉스가 그러하듯이. 큰 길을 따라가기만 하면 돼서, 그다지 길찾기에 애먹지는 않고 우리는 걷는 동안 별별 이야기를 다 했다. 가족들에 대한 이야기, 하는 일에 대한 이야기, 지난 연애에 대한 이야기, 한국의 술 이야기 ㅋㅋ 등등. 마크의 나이도 이때 처음 알게 됐다. 우리는 서로의 나이에 놀라고 말았지… 이때만 해도 날씨가 너무 좋고 평화로웠다.

성 사바 성당


드디어 발견!

무사히 도착. 한참을 걸어서 갈증이 나서, 성당에 들어가기 전에 조그만 편의점에서 물과 음료수같은 걸 샀다. 비록 신앙생활을 하진 않지만, 내가 천주교인이라고 생각하고 있어서 여행을 갈 때마다 그 지역의 성당을 꼬박꼬박 가 보는 편이다. 세르비아를 방문함으로써 처음으로 정교회 성당을 가게 된 것이다. 그것도 가장 큰 정교회 성당. 성 사바 성당은 내부 공사중이라고 들었는데 앞으로도 몇 년간은 계속 공사를 해야 한다고 들었다. 위의 사진은 성당의 정면이 아니라 측면이다. 그리고 실제로 보면 정말 어마어마하게 크다.

내부는 어두워서 사진을 찍기가 좀 힘들었다. 찍은 사진 모두 처참하게 흔들림(;) 성 사바 성당은 지금까지 내가 방문했던 성당들과는 정말 분위기가 달랐다. 같은 피사체를 다른 화풍으로 그린 느낌이랄까. 분명히 대상이 같은데도 묘하게 이질적이고 낯선 느낌이 신기해서 내부의 성화들을 꽤 오래 들여다보았다. 높이가 90m에 달하는 성당이기 때문에 외부도 그렇지만, 내부에서 천장을 올려다볼 때 느껴지는 웅장함이 대단했다. 모자이크로 내부를 모두 장식할 계획이라고 하던데 아직은 아무것도 되어 있지 않았다. 성당의 외관도 신선하다. 이스탄불의 성 소피아 성당을 모델로 했다고 한다. 익숙한 서유럽 문화권의 성당 건물과는 상당히 다른 모습. 하얀 도시라는 뜻의 베오그라드를 상징하는 성당으로 잘 어울린다는 생각도.

성당 앞의 공원, 그러니까 위의 사진을 찍은 그 자리에서 마크는 누워서, 나는 앉아서 한 시간 정도 쉬었다. 만난지 하루 된 외국인 친구에게 한국에서 얼마나 힘들게 일했는지, 내 삶이 앞으로 얼마나 막막한지 등을 토로하게 될 줄이야. 웃기게도 마크는 상당히 진지하게 들어주고 한국의 처참함(;)에 깜짝 놀람. 한국을 떠나는 건 생각해 본 적 없냐고 하길래, 돈도 없고 영어도 잘 못하고 한국에 있는 가족들과 친구들을 생각하면 어렵다고 했다. 마크는 내 영어는 충분하고, 혼자 이곳까지 여행을 오는 것만으로도 충분히 용감하니까 더 용기를 내 보라고 이야기 해주기도. 내가 정말 한국을 떠나서 살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그런데 아무리 고민해도 내가 한국을 뜰 수 있는 기회를 찾아내기가 쉽지 않다. 분수를 멍하니 바라보면서 앞으로의 내 인생이 어떨지 잘 모르겠다는 말을 자꾸 반복했다. 사람들은 다들 행복해 보이더라.

빈둥거리다 하늘을 보니 심상치 않다. 올때만 해도 날씨가 너무 좋았는데…… 응? 마크야 하늘이 이상해. 비올 거 같애, 비 오기 전에 가야겠다고 말 하자마자 빗방울이 떨어지기 시작했다. 우산이 없던 우리는 후드를 뒤집어 쓰고 왔던 길 그대로 고스란히 비를 맞으며 돌아오게 된다. 뛰다가 걷다가 뛰다가 걷다가……. 마크야 영국인이니까 그런 변덕스러운 날씨, 우산 없이도 맞이하는 비가 익숙했겠지만 나는 힘들었다. 오는 길 중반 쯤에는 진심으로 굵은 장대비가 소나기처럼 내렸는데 그걸 쫄딱 맞았지 뭐야. 또 신발이 다 젖어서 발도 젖어버리고. 결국 호스텔에 도착하자 또 감기 기운이 으슬으슬하게 올라온다. 맙소사. 결국 다시 씻고 침대에 기어올라가 노트북 좀 하다가 잠들고 말았다. 비만 오지 않았다면 구경할 만한 곳 적어도 한 군데는 더 갔을 것이다.

자다가 일어나니 다 저녁때가 되어있었다. 마크도 어딜 갔는지 없다. 배가 고프길래 주섬주섬 옷을 입고 무턱대고 길을 나섰다. 전날 식사를 했던 거리에 가서 5유로를 더 환전하고, 전날 식사를 했던 Tri Sesira에 다시 가서 저녁을 먹었다. 왜냐하면……. 지난 포스트에도 썼지만 세르비안 수프 너무 맛있었고 그걸 먹으면 감기 낫는 기분 들었기 때문에(;)

그래서 또 Tri Sesira

사람이 너무 많아서 전날과 다르게 2층까지 올라왔는데도 2층에도 협소한 2인용 테이블밖에 없다. 이 테이블도 괜찮다고 했다. 정말 괜찮았다. 전날에는 마크, 조와 먹느라 가게 분위기를 제대로 느끼지 못한 감도 있는데 혼자 가니 확실히 훨씬 여유있어서 좋았다. 나 혼자 사진찍으며 호들갑 떨기도 편하게 할 수 있었고(;) 내 자리는 안쪽의 큰 홀에 들어가기 전 복도에 만들어둔 테이블 같은 느낌이 좀 있었는데, 안쪽에서는 라이브 밴드 연주자들이 세르비안 전통 음악을 직접 노래까지 하며 연주하고 있었다. 동영상으로 조금 찍어두기도 했다.

또 세르비안 수프, 넌 사랑.


또 로컬 맥주, 너도 사랑.

이거 뭐였더라, 세르비안 전통 음식 스타일이었는데. 여튼 너도 사랑.

연주자들이 나오자, 내 옆 테이블에 있던 아가씨들 중 한명이 나에게 사진을 찍어달라고 부탁했다. 연주자들과 사진을 찍고 싶었던 모양이다. 흔쾌히 찍어주었는데, 연주자 중 한 명이 내게도 같이 사진을 찍겠냐며 역제안(?) 해주셔서 기념으로 나도 그분 중 한명과 사진을 찍었다. 다정하셨음. 누군가 세르비아에 간다면 Tri Sesira를 베오그라드 맛집이라고 꼭 추천해야지. 다른 곳을 안가봐서 비교 우위를 논할 수는 없지만, 절대적인 맛이 뛰어나니까.

다 먹고 홀로 터덜터덜 모자이크 호스텔로 돌아왔다. 내 베오그라드에서의 일정이 모두 끝난 것이다. 내 여행 일정의 가장 큰 실수는 베오그라드에서의 일정이 너무 짧았다는 것, 그리고 그마저도 나쁜 컨디션과 나쁜 날씨덕에 제대로 보내지 못한 것이다. 만약 누군가가 나에게 발칸 여행지 중에서 한 군데만 다시 갈 수 있다면 어딜 가겠느냐 묻는다면, 망설이지 않고 베오그라드라고 대답할 수 있다. 그곳의 조금 차갑고 낡은, 낯선 느낌이 너무 좋았다. 베오그라드에서 넉넉히 시간을 보내지 못한 것이 참 아쉽다. 다시 베오그라드를 간다면 일주일 정도는 머물면서 여유도 부리며 지내고 싶다. 그리고 베오그라드, 고기와 술을 좋아하는 사람들에게 너무 행복할 곳이며, 밤문화도 발달했기 때문에 재미있을 수 있는 곳……. 물가도 저렴하기 때문에 (모자이크 호스텔의 1박 숙박비는 한화로 8000원이 조금 안 된다.) 베오그라드는 나한테 천국이야, 천국.

호스텔로 돌아오니 아까는 없던 마크가 되돌아와있다. 마크가 날 찾고 있었는지 보자마자 허겁지겁 말을 하는데 다음날 아침에 나와 함께 사라예보에 갈 수 없게 되었다는 소식이었다. 마크의 또 다른 영국인 친구가 내일 베오그라드에 온다고 했다면서. 그래서 사라예보로 당장 떠나지는 못하지만 모스타르, 두브로브니크에 내가 머물 때에 자신도 도착할테니 그때 다시 만나자고. 뭐 어차피 혼자하는 여행이었기에 크게 마음 쓰이는 건 아니어서 알겠다고, 괜찮다고, 미안해 하지 않아도 된다고 대답했다. 서로 연락할 수단이 없었기 때문에 이메일 주소를 교환하고 페이스북 친구를 맺었다. 그리고 일기를 조금 쓰다가 일찍 잤다. 사라예보로 가는 미니밴이 아침 8시까지 온다고 했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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