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오그라드 가기

셔틀버스를 타고 출발을 기다리다 문득 이상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륙 시간으로부터 벌써 10분이 지났는데 셔틀버스가 출발도 하지 않고 있는 것이다. 심지어 얼마간 더 기다리다가 드디어 셔틀버스가 출발했는데 이거 공항을 벗어나는거 아닌가 싶을 정도로 길고 긴 장거리 운행을 하는 것 아닌가. 아예 외부 도로로 나와서 막 지하도로도 지나고, 황량한 폐허 같은 곳으로(;) 버스가 하염없이 달리길래 뭐지? 싶었다. 버스가 나를 낯선 곳으로 데려갈리 없을테니 가만히 앉아있긴 했지만. 역시나 내 의아함은 단순한 기우였고, 다른 터미널로 와서 무사히 비행기를 탑승하기 시작했다. 비행기는 2×2의 소형 비행기. 그 비행기를 타고 있는 사람 중에 동양인은 오직 나 뿐이었고 대부분이 독일인 아니면 세르비아인 같았다. 비행시간이 길지 않았기 때문에 (2시간 미만) 타고가는 동안 간식으로는 작은 빵이 나왔다. 맛있었음. 유럽빵은 진리다.

그리고 베오그라드 공항에 도착한 나는 뮌헨 공항과는 다른 그 작고 삭막하고 칙칙한 분위기에 조금 당황했다. 물론 그럴 거라고 예상하긴 했지만 정말 그렇길래(;) 입국 심사 게이트 공간도 상당히 협소했고 어두웠다. 줄 서 있는 사람들 중에도 역시나 동양인은 보이지 않는다. (이후로도 나는 세르비아에 있는 이틀 동안 나 말고 동양인을 발견하지 못 했다. 우연인건지 마주친 적이 없다.) 세르비아의 입국 심사는 불친절하고 가끔 이상한 질문들을 하기도 한다길래 조금 긴장했으나 다행히 별일 없이 통과. 그러나 차갑고 고압적인 분위기였던 것이 기억난다. 베오그라드 공항에서 시내로 가기 위해서는 셔틀 버스를 타야했다. 셔틀 버스는 A1이라는 미니버스로, 공항 앞에 대기 되어 있어 쉽게 찾을 수 있다. 버스를 타기 전에 유로를 세르비아 화폐인 디나르로 환전하고 셔틀버스를 탔다. 버스 앞에 표를 파는 사람이 서 있다.


세르비아 베오그라드 공항

 A1 버스 티켓, 300디나르

버스는 한국의 시내버스보다도 작은 사이즈. 버스 가운데에 짐을 둘 수 있게 되어 있어서 그곳에 캐리어를 넣고 서서 갔다. 사람이 많았기 때문에……. 세르비아도 우리나라처럼 운전자 좌석이 왼쪽에 있고, 운전기사 석은 유리로 둘러져있는데 총탄 자국같은 것이 있어서 약간 놀랐다. 버스는 한 30분 정도를 달렸는데, 공항에서 출발 할 때만 해도 흐렸던 날씨는 점점 비가 오더니 시내에 도착할 때쯤엔 빗줄기가 제법 굵어졌다. 나는 베오그라드 버스 터미널에서 하차했다. 버스 터미널도 크지 않고 허름했는데 난민들과 부랑자들이 그 장대비를 그대로 맞으며 줄지어 앉아있었다. (당시 유럽의 난민 이슈가 불거져있던 시기였다.) 내가 베오그라드에서 머무르기로 한 호스텔은 모자이크 호스텔. 구글맵을 통해 검색해서 가려는데, GPS가 잘 맞지 않는 것인지 영 지도 상태가 이상했다. 비도 어찌나 많이 오는지……. 그러다 문득 뒤를 돌아봤는데, 세상에. 버스 터미널 앞에 앉아있는 난민과 부랑자들이 모두 나를 보고 있는 것 아닌가 -.- 꺼림칙해서 일단 버스터미널을 벗어나기로 했다. 얼마간 아무 방향으로 걸어 한적한 곳에 도착해서는 다시 지도를 껐다 켰다가 한참을 반복하다가 대충 위치가 잡히는 것 같아서 걸어가기로 한다. 충분히 걸어갈 수 있는 거리로 보였다. 그리고 택시비가 비싸다는 말을 듣기도 해서.

모자이크 호스텔 베오그라드 (Mosaic Hostel Belgrade)


베오그라드의 첫 인상

그런데 그게 그렇게나 고행일 줄이야……. 실제로 거리 상 그리 먼 거리는 아니었으나, 비는 너무나 많이 오고, 길이 상당히 헷갈리고, 심지어 대부분 비탈길, 계단이었기 때문에 캐리어를 끌고 나는 정말이지 험난한 여정을 하게 되었다. 게다가 오전에도 뮌헨에서 비 때문에 몸이 젖어서 뮌헨 공항에서부터 사실 감기 기운이 좀 있었기 때문에 더욱 힘들었다. 캐리어도 너무 무겁고, 우산은 바람 때문에 몇 번이나 뒤집히고 난리도 아니었다. 그 와중에 중간에 보이는 편의점 같은 곳에 가서 바디워시와 샴푸를 하나씩 샀다. 그냥 현지에서 살 생각을 하고 아예 안 챙겨왔었기 때문에. 세르비아 물가가 한국에 비해 많이 낮기는 하지만 공산품 가격은 큰 차이가 없다.


힘들었다…….


우라질, 비가 이 지랄로 왔다.

어찌저찌 호스텔을 찾아온 나는 또 다시 난관에 부딪히고 말았다. 분명 지도 위치상 이 건물인데 이 건물에는 호스텔이 없어! 그래서 그 주변을 무려 15분이나 배회하며 호스텔을 찾게 되었다. 그 길에 있는 거의 모든 건물을 다 들어가 기웃거려 본 듯 하다. 누군가에게 물어보니 알려주길래 그곳으로 가니 아니라고 하고. 안그래도 힘들어 죽겠는데 답답해 환장할 노릇이었다. 내가 최초에 갔던 건물에서 어떤 남자가 나오길래 또 다시 붙잡고 물어봤다. 그 건물은 1층에 댄스클럽이 있었고 그 위로 올라가는 계단은 아예 문이 닫혀있고, 계단이 잘 보이지도 않을 정도로 컴컴했고, 건물에 호스텔이 있다는 표시 하나 없었는데…… 남자가 태연히 대답하길, 그냥 계단을 올라가면 된다는거야(;)  그래서 속으로 쉴새없이 욕을 하며 문을 열고 캄캄한 계단을 오른다. 정말 이 위에 호스텔이 있는 것인지 믿을 수 없을 만큼, 불 하나 켜져있지 않은 계단을 의심 속에서 오르는데 어둠속에서 웬 남자 한명이 불쑥 나타났다. 그 남자는 영국인 마크, 반갑게도 모자이크 호스텔 숙박객이었다. 게스트 하우스에 가냐고 나에게 물어보길래 그렇다고 하니 안내해주었다. 아니 정말 여기네! 모자이크 호스텔 구글맵의 위치가 정확하다. 그 (스트립)댄스 클럽이 1층에 있는 건물! 영 미심쩍어 보여도 믿고 계단을 오르시길 바란다.

모자이크 호스텔 실내를 찍어둔 사진이 없는데, 상당히 작다. 도미토리로는 총 8개의 2층 침대가 전부이고 한 방에 4개씩 있다. 사실 두개의 방이 연결되어 있기 때문에 그걸 각각 방이라고 하기도 뭐 하다. (그 외에 단독 사용 가능한 룸도 두개 있는 걸로 안다.) 라운지에서 바깥쪽 방으로 들어가서 안쪽 방으로 들어가야만 하는 구조. 그리고 라운지와 연결된 바깥 방은 문도 늘 열려있고, 라운지(라고 해봤자 그냥 테이블 하나 의자 3개 있는 복도같은 공간)에서는 늘 누군가가 담배를 피우고 있다. 주방과 욕실이 있는 복도 옆에서 호스트인 알렉스와 그의 아내가 지낸다. 심지어 오픈된 공간…… 여기까지 쓰니 모자이크 호스텔 되게 별로같지? 하지만 난 모자이크 호스텔을 사랑하고, 언젠가 다시 베오그라드에 가면 꼭 다시 모자이크 게스트 하우스로 가고 싶다. 일단 호스트인 알렉스가 너무 친절하고 유쾌했으며, 게스트하우스는 작지만 아늑하고 깨끗하고, 나도 흡연자라서 사실 실내에서 누가 담배피우는 것 별로 개의치 않고, Wi-fi는 한국 수준일만큼 빨랐다. (아빠에게 이걸 이야기하니, 후진 나라일수록 와이파이가 잘 되는 거냐며……) 찾아가긴 어려웠지만 호스텔 입지도 사실 상당히 좋은 곳이다. 물가가 싸기 때문에 가격도 저렴한 것은 덤. (모자이크 호스텔 : http://booking.com/ba63b644ab4eed675)

1박 이상 하는 여행객은 호스트가 대신 신고를 해야 했기에 알렉스의 아내 소냐에게 여권을 건네고 숙박비를 지불했다. 나를 따뜻하게 맞이한 알렉스는 내 침대를 안내해주었다. 다른 침대에는 이미 머물르고 있는 여행객들의 짐들이 잔뜩 쌓여있다. 나도 짐을 대충 풀고 옷을 갈아입고 나오자, 알렉스가 베오그라드 지도를 펼쳐 이것저것을 알려주었다. 꼭 가봐야 할 관광 스팟, 헝가리 분위기가 나는 강 건너 zemun(알렉스가 제문에 꼭 가라고 했지만 결국 못 갔다.) 맛있는 레스토랑 등등. 알렉스와 소파에 앉아 같이 담배를 피우며 내 여행 이야기도 하고, 스포츠 잡지를 봤다. 축구를 좋아하는 세르비아인답게 한국의 축구 리그에 대해 물어봐서, 내가 태어난 도시가 한국에서 가장 축구를 잘한다고 (진심으로 이렇게 생각함) 자랑했다. 스포츠 잡지에는 글로벌 축구 리그의 스케줄이 모두 나와있어서, 그 중 K-리그를 찾아 보여주기도. 잠시 그렇게 휴식 시간을 보냈다.

 

Tri Sesira (Три шешира)

나를 호스텔로 이끌어준 은인, 마크가 저녁을 먹을 생각이 있으면 같이 나가자고 하길래 마크를 따라 나섰다. 마크는 프랑스에서 영어를 가르치고 있었고 동유럽을 여행중이라고 했다. 마크가 내 이름을 어려워하길래 소피아라고 부르라고 했다. 중간에 마크의 친구 조도 합류해서 우리 셋은 알렉스가 추천해준 레스토랑으로 향했다. 베오그라드에서 맛집으로 소문난 레스토랑들은 모두 사바강과 도나우강의 두물머리 근처에 모여있다. 그 중에서도 알렉스가 강츄강츄한 Tri sesira에 갔다. 위치는 구글맵에 검색하면 나온다.

Tri sesira는 세르비안 음식 레스토랑이다. 연주단이 세르비아 전통 음악을 연주해주기도 하고, 분위기가 괜찮다. Tri sesira가 위치한 골목에는 대부분 이런 레스토랑들이 모여있다. 여전히 컨디션이 좋지 않은 나는 따뜻한 것을 먹고 싶어 세르비안 수프와 믹스드그릴미트, 그리고 맥주를 주문했다. 마크와 조도 각자의 주문을 하고는 대화를 했다. 뮌헨에서 만났던 영국인 친구들과 달리 마크와 조는 상당히 센 영국식 발음과 악센트여서 내가 그들의 대화를 한 번에 알아듣지 못하는 일이 많았다. 조는 나에게 북조선이냐 남조선이냐 묻길래 내가 당연히 남한이라고, 북한 사람들은 그다지 자유롭지 못하다고 말해줬는데 놀랍게도 조가 평양에 다녀온 적이 있다고 했다. 헐, 대박. 어떻게 갔느냐고 하니 베이징에서 갔단다. 왜 남한이 아닌 북한을 갔냐고 하니, 자신은 위험한 곳을 여행하길 좋아하고, 남한은 몹시 안전하기 때문에 흥미가 없다고 잘라 말하더라.

그리고 음식이 나왔는데, 세르비안 수프…… 이 세르비안 수프는 내가 발칸 여행을 하며 먹었던 모든 것들 중에 가장 맛있었던 음식이다; 그때 내가 몸이 안 좋아서 따뜻한 수프가 간절해서였을 수도 있지만 한입 먹고 그대로 반해버렸다. 정말 띵동! 했다. 아주 특별한 맛도 아닌데도 어쩜 그렇게 맛있었는지. 안에 고기와 양파 당근 뭐 이런것만 들은 것 같았는데 그렇게 맛있을 수 없었다. 심지어 로컬 맥주도 맛있었고, 주문한 그릴밋도 맛있었다. 상당히 만족스러운 식사였다.


세르비안 수프 먹으러 베오그라드 다시 가고 싶을 정도다.

 내가 주문한 믹스드그릴밋. 너무 많아서 먹다 남겼고, 마크와 조가  남은 것을 처리했다;

식사를 마치고 뭐 할 거냐고 묻길래 나는 조금 망설였다. 마크, 조와 함께 PUB CRAWL을 가면 좋겠지만, 몸 상태가 좋지 않았기에 어쩌나 싶었다. 하지만 가고 싶고. 그래서 깊은 갈등을 했는데, 조가 말하길 PUB CRAWL 하면서 코카인도 할 수 있다는 것이다. 와우, 정말?! 그 말에 귀가 번쩍 트여서 컨디션이고 뭐고 코카인 하러 간다!에 마음이 확 기울어버렸다. 그래, 가자. 가자. 가자!! 하고는 우리 셋은 함께 가게를 나섰다. 하지만 단 50미터 정도를 걷고 나는 포기했다. 걷다보니 몸의 열이 확 올라오며, 도저히 이건 코카인이고 자시고 내가 술집투어를 할 상태가 아니라고 종을 울려대는 것이었다. 마크, 조, 미안해. 나 감기에 걸린것 같아서 쉬어야겠어. 너무 피곤해. 마크가 걱정 되었는지 모자이크까지 혼자 갈 수 있냐고 하길래 괜찮다고 그대로 그들을 보내버리고 홀로 모자이크로 돌아왔다. 그래도 내가 길눈은 밝은 편이라 한 번 거쳐간 길은 잊지않고 다시 돌아갈 수 있다.

이 길을 홀로 건너면서부터 마크/조와 헤어졌다.

마크와 대화하며 가느라 제대로 보지 못했던 번화가의 모습을 제대로 볼 수 있었다. 세르비아도 밤 문화가 발달했다. 알렉스가 24시간 편의점의 위치도 알려주었을 정도니, 한국 못지 않다. 동유럽의 핵폭탄이라는 별명이 있을 정도이기에 위험한 곳 아니냐며 내 주변 사람들이 다들 나를 걱정했지만, (심지어 위험한 나라만 여행한다는 조가 이곳에 와있고…) 막상 돌아다녀보니 별로 그런 느낌은 없었다. 비고 오고 날이 추워도 바깥에 난로를 세워두고 테라스에서 술을 마시는 사람들도 있었다. 그리고 세르비아는 사람들이 참 담배를 많이 피운다. 이동하지 않고 멈춰있거나 앉아있는 사람들은 대부분 둘 중 하나다. 담배를 피우고 있거나, 담배를 이제 막 피우려고 하고 있거나. 어려보이는 친구들도 담배를 많이 피운다.

모자이크 호스텔로 돌아오면서 사진을 여러장 찍기는 했는데 대부분 흔들렸다(…) 나는 수전증이 있어서 야간 촬영이 쉽지 않다.

여긴 호스텔 앞의 길.

씻고 침대에 누웠는데, 웬 녀석들이 늦은 체크인을 하는 바람에 조금 시끄러웠다. 이어폰을 꽂고 누워서는 PUB CRAWL을 못 간 것을 아쉬워하며 잠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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