뮌헨에서의 하룻밤

숙소까지 왔던 길을 그대로 되돌아 간다. 다시 U6를 타고 Marienplantz역으로 갔다. 호프브로이는 역에서 걸어서 10분 이내의 거리에 있다. 밖으로 나오니 이미 해가 졌다. 뮌헨의 중심부인 마리엔 광장에 나와 이곳저곳을 둘러 보았는데, 전형적인 유럽의 모습인데, 독일이라 더 그렇게 느껴지는 건지는 모르겠지만 대체로 크고 정돈된 느낌이었다. 고급 샵들이 즐비한 광장 주변을 한 바퀴 돌아 보았다. 셀카봉을 처음 꺼내서 셀카를 찍고 친구에게 보내주었더니, 셀카봉 처음 쓰는 사람 티가 난다더라. (그때만 해도 그랬지.)

마리엔 광장 주변을 짧게 구경하고 구글맵이 시키는대로 호프브로이를 찾아간다. 광장 뒤쪽의 길로 들어가자, 풍경이 조금 더 재미있어진다. 역시 이런 쪽이 내게 더 맞는 듯 해. 햄버거가게, 기념품가게, 편의점 같은 것들이 제각각의 모습으로 나열된 좁은 길을 천천히 걸었다.  중간에 축구 관련 기념품 샵도 있었는데, 축덕인 후배 D가 떠올랐다. 들어가서 선물을 좀 살까 하다 말았는데 나중에 D에게 이 이야기를 했다가 한 소리 들었다.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 목적지에 도착했다. 건물이 몹시 커서 사진 한 컷에 담기 힘들었는데, 들어가서 보니 밖에서 눈에 보였던 건물이 호프브로이의 전부가 아니더라. 호프브로이는 정말 컸다.

호프브로이하우스

다른 무리들을 뒤따라 호프브로이에 들어선 나는 순간 어떻게 해야 할지를 몰라 우뚝 서고 말았다. 누군가가 자리를 안내해주는 것도 아니고 눈에 보이는 넓고 큰 호프는 모든 테이블이 사람들로 가득 차 있었다. 직원들이 왔다갔다 하긴 하지만 시도때도 없이 사람들이 들락이는 입구에 멀뚱멀뚱 서있는 나에게 관심가져주는 이는 단 한 명도 없었다. 어느 빈 자리에 가서 합석을 해야 하나 망설이고 있는 찰나에 입구 근처의 테이블에 있던 남자가 헤이! 하며 나를 불렀다. 자신들의 테이블에 빈 자리가 있으니 와서 앉으라는 것이었다.

호프브로이 천장

호의를 거절할 필요 없으니 아주 당연하게 남자의 비어있는 옆자리에 앉았다. 남자는 자신을 그렉이라고 소개했다. 그렉은 뉴질랜드 인으로, 갓 40이 되었다. 친구와 함께 왔다고 했다. 그렉에게도 간단히 내 소개를 하고, 상당히 배가 고픈 상태였기 때문에 곧바로 저녁으로 먹을 것을 주문했다. 사실 학센을 먹고 싶었는데, 그렉이 학센 보다는 이게 더 좋다며 다른 것을 추천해주었다. 메뉴 이름이 정확히 기억은 안나지만 아기돼지 찹스테이크 같은 거였는데……. 어쨌든 그것과 호프브로이를 주문했다. 호프브로이 맥주는 뮌헨 경유를 선택한 계기였기 때문에 내심 기대가 컸다. 그리고 맛을 보니 역시! 맛있는데! 기대만큼은 아니었다. 우주최고의 맥주를 기대했었나보다.

헉, 크다. 기본 잔이 1000cc였던 것 같다.


그럭저럭 먹을 만 했다. 사실 맛이 잘 기억 안남.

그렉과 그의 친구와 한참을 대화했는데, 베오그라드에 간다고 하니 왜 그곳을 가냐고 신기해하는 것은 유럽인들도 마찬가지였다. 우리 테이블에는 다른 사람들도 몇 번을 왔다갔다 했는데, 그중 한 사람은 에반으로 미국인이었다. 에반 역시 스마트스테이에 머무르고 있다길래, 서로 반가워하기도. 그리고 그렉과 더 이야기를 했는데 그렉이 나에게 예거마이스터 한 잔을 사주기도 했다. 그렉은 술을 꽤 많이 마셨는데 그래서인지 결국 나에게 아시안걸과 키스하면 어떤 느낌일지 궁금하다는 말을 하고 말았고…… 나는 곧바로 그렉의 친구에게 ‘당신 친구가 나한테 이런 말을 했어. 이 사람 너무 취했어.’라고 곧바로 고자질했다. 결국 친구가 대신 사과하며 그렉을 데리고 떠나주었다. 그리고 나는 에반에게 가방을 부탁하고 화장실로 갔다. 화장실을 가기 위해서는 건물 뒤쪽의 정원같은 곳을 지나 연결된 다른 건물로 가야 했는데, 그 중간의 정원에서 담배를 피우다가 두 명의 영국인 여학생을 만났다. 그들이 먼저 나에게 말을 걸었는데, 내 신발과 카메라가 귀엽다는 것이었다. 둘과 함께 담배를 피우며 이런 저런 이야기를 하다가 자기네 테이블로 오라며 초대하길래 알겠다고 하고는 원래의 자리로 돌아와 가방을 챙기며 말했다. 에반, 나는 다른 친구들이 있는 테이블로 갈 거야. 나도 가고 싶어! 그래, 그럼 같이 가자.

격한 환영을 받으며 옮겨간 테이블은 훨씬 재미있었다. 그렉과 그의 친구는 나이가 좀 있어서 살짝 루즈하고 노잼이었지만, 역시 젊은이들과 노니 즐겁더군. 특히 레이첼이 상당히 상냥했는데, 그녀는 흑맥주가 훨씬 맛있다며 흑맥주를 마시라고 하길래 마셨더니 아니 진짜 흑맥주가 더 맛있잖아? (참고로 내가 그 자리에 앉아서 마신 맥주들은 모두 레이첼 일행이 계산했다.) 이런 저런 수다를 떨다가 누군가 갑자기 시작해서 오아시스의 원더월을 다같이 부르기도 하고. 너무 띵곡이라 다행히 나도 아는 노래라서 함께 부를 수 있었다; 덕분에 뮌헨을 생각하면 엉뚱하게도 영국의 국민노래 원더월이 떠오른다.

에반, 레이첼, 콘스탄체. 이 셋과는 아직도 SNS를 통해 교류하고 있다.

레이첼과 콘스탄체의 사촌과 친구들과 연인들.  다들 친절하고 유쾌했음.

콘스탄체와 레이첼과는 몇 번이나 함께 담배를 피우러 나갔는데, 한국어로 penis는 뭐라고 하는지를 묻길래 잠시 고민했다. 좆이라고 해야 할까 고추라고 해야 할까. 그러다 고추라고 알려줌(;)

한참을 놀다가 시간이 늦어 다시 숙소로 돌아가려 하니 에반이 함께 가자고 한다. 거리가 너무 멀지 않으니 우리는 술도 깰 겸, 밤 거리를 걸을 겸 걸어서 가기로 했다. 근데 아마 그 시간에 U반도 운행을 하지 않았을 것 같다. 에반과 나는 둘다 취한 상태라 한참을 잘못 된 방향으로 가다가 중간에 되돌아가기도 했다. 조용하고 캄캄한 거리를 걸으며 건물들이 예쁘다는 말을 했다. 한국의 건물들은 다 똑같이 생겼어. 미국도 그래 ㅋ 뭐 이런. 에반은 언젠가 꼭 미국의 뉴욕도 가보라는 말을 했다. 이상하게 그 말이 기억이 나네.

밤에 본 시청

 쏘리, 에반. 내가 좀 취했네. 여행과 자전거를 좋아하는 에반은 요즘 미국에서 자전거 여행을 하고 있다.

숙소로 돌아온 우리는 각자의 방으로 돌아가며 작별 인사를 했다. 에반은 뮌헨에 며칠 더 머무른다고 했고, 내게 앞으로의 여행 굿럭이라며 연락하라고 당부했다. 그리고 숙소의 방문을 조심스럽게 열고 살금살금 들어와 간단히 씻었다. (방 안에 전용 욕실이 있다.) 같은 룸을 쓰는 친구들은 모두 잠들어 있었다. 2층 침대로 기어 올라가 눈을 감자마자 순식간에 잠들었다.

그리고 아침에 의외로 일찍 일어났다. 심지어 알람도 안 맞췄는데 알아서 눈을 떴다. 아침잠이 많은 나에게 상당히 낯선 일이다. 다른 사람들은 아직 잠들어있는 가운데, 또 다시 살금살금 씻고 나갈 준비를 하고 잠겨있지 않은 서랍 안에서도 안전했던 캐리어를 끌고 나왔다. 공항에 가기까지 적어도 3시간 정도는 여유가 있었기 때문에 뭘 할지를 나와서 고민한 나는 그냥 다시 마리엔 광장으로 가기로 한다. 어차피 공항으로 가려면 마리엔광장으로 가야 하니 그냥 그곳에서 아침 먹고 기념품이나 살 생각이었다.


호스텔 방에서 나가기 전 바라본 창밖. 가운데에 ‘한국식품’ 이라고 써있는 가게.


비가 오는 모차르트 스트릿, 바이.

마리엔 광장에 도착하자 비가 제법 온다. 우산을 챙겼기에 다행이라는 생각을 하며 어디서 아침을 먹을까 찾다가 그냥 아무 카페나 들어갔다. 정말 그냥 눈에 보이는 아무 카페. 들어가서 빵 하나, 커피 한 잔을 주문했다. 되게 저렴했는데 빵! 빵이 진짜 너무 맛있더라. (사실 빵 별로 안 좋아하는데도) 생각해보니 호프브로이에서 먹은 저녁보다 그 빵이 더 맛있었던 것 같다. 비가 와서인지 상당히 추워서 커피로 몸을 녹이며 뭘 할까 고민했다. 그 카페는 주구장창 죽치고 있기에는 좀 부적합한 곳이라 한바퀴 둘러보고 다른 카페에 가서 시간을 떼우는게 좋겠다고 판단하고 나왔다. 담배 한 대 피우고 눈에 보이는 기념품 판매 노점에 가서 기념품을 구경했다. 여행지에 갈 때마다 그 도시의 마그넷을 사기 때문에 일단 마그넷 하나 사고. 그런데 역시 기념품 같은 것에 크게 욕심이 없어서 딱히 사고싶은 것은 없었다. 그리고 이쯤에서 나는 장갑을 사기로 결심한다. 이유는 정말 지독하게 추웠고; 손이 너무 시려워서……. 몇 군데 샵에 들렀고 그 중 적당한 장갑을 하나 찾게 되어서 구매했다. 대충 60유로 정도 했던 것 같다. 그리고 다른 카페에 들어가 베리주스 하나 마시며 책을 좀 읽었다. 발칸 여행 관련 에세이였는데, 발칸의 역사에 대해 너무 깊지도 얕지도 않게 기술된 책으로, 여행에 나름 참고가 되었다.


아침을 먹은 카페. 훌륭한 빵을 파는 곳.


가히 전설의 빵.


상냥했던 아저씨.


이곳에서 장갑을 샀다.


장갑과 베리주스.

그러다 슬 나갈 시간이 되어 다시 거리로 나왔다. 마리엔 광장 주변을 한바퀴 돌아보며 밤과는 다르게 보이는 그곳 풍경을 감상했다. 비가 안 왔더라면 더 좋았을텐데. 신발이 방수가 되지 않아 발도 젖어가서 너무 추웠다. 정시가 되면 시청에서 종을 치는지, 시청 앞에 사람들이 조금씩 모이더니 다들 종 칠 시간만을 기다린다. 그래서 나도 시청 건물 앞에서 잠시 기다렸다. 밤에 봤을 때와는 달리, 환한 때에 보니까 역시 관광 스팟일만 하다는 느낌이 든다. 건물이 정말 어마어마하게 크고 탑에서는 뮌헨 정경을 볼 수 있다고 들었다. 마침내 정시가 되어 종이 쳤는데 되게 길게 치더라. 종탑에서 인형이 튀어나와서 짧은 인형극 같은 것을 하는데……. 솔직한 감상으로는 이걸 뭐 굳이 기다려서 구경까지 하나 싶었지만 나도 끝까지 다 지켜보긴 했다.


뮌헨 시청

 그리고 지하철을 타고 공항으로 향한다. 어이없게도 딱 그시간에 맞춰 비가 그치고 하늘이 개기 시작했다. 나중에 알게 되었는데, 예전에 함께 근무했던 L과장님이 독일에서 지내고 계신 건 알았지만 그곳이 뮌헨인줄은 몰랐다. 내가 인스타그램에 뮌헨 사진을 올리자 뮌헨에 왔었냐며 연락을 하지 그랬냐고 아쉬워하셨다. 그리고 L과장님도 내가 마리엔광장에 있던 날 마리엔광장을 지나치셨었다고……. S반을 타고 다시 공항으로 가는 동안은 안에서 좀 졸았던 것 같다. 공항에 여유롭게 도착하긴 했는데 컨디션이 영 좋지 못하다는 것을 느꼈다. 보안 검색을 위해 줄 서서 기다리는 동안 으슬으슬 오한이 들고, 몸이 영 무거웠다. 아무래도 비오는 추운 바깥을 돌아다닌데다 신발까지 젖어서였는지. 독일의 보안 검색은 까다로운 편에 속해서 더 피곤했다. 라운지에서 좀 쉬다가 보딩 게이트로 향했다.


커다랗고 맛있어 보이는 빵들……


당근 주스 하나 사마셨다.

그렇게 뮌헨에서의 하루를 보내고, 어차피 잠깐 들르는 곳이어서였는지 큰 아쉬움은 없이(;) 베오그라드로 떠났다. 그래도 언젠가는 독일에도 제대로 다녀오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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